오래된 강에서 미래를 찾았다
강은 '오래된 미래'였다. 강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과거 삶 속에 이미 있다. 사람들은 예부터 맨몸으로 강에 기대어 살아왔다. 강은 흐르고 때론 넘치며 땅을 적셨다. 사람들은 강이 마련해준 비옥한 토지에서 삶을 영위했다. 삶은 무리로 나뉘었고 서로를 겨누며 싸우기도 했다. 강은 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물 위의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강을 통해 서로 만나 가진 것을 바꾸고 나누었다. 강 곁에서 학자들은 학문을, 작가들은 문학을 일으켰다. 이제 사람들은 긴 세월 돌아서 다시 강 앞에 섰다. 강의 너른 곡선 품에서 여유를 찾고 있다. 강을 통해 삶은 더 풍성해지고 있다.
◆강, 아름답다
강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 긴 세월 동안 흘러 빚어낸 빼어난 자연경관은 사람들의 눈을 홀렸다. 풍광에 이끌려 사람들은 강을 찾았다.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 청량산 강변길은 낙동강의 으뜸가는 경치를 자랑했다. 퇴계 이황은 낙동강을 따라 이 길을 걸었다. 퇴계는 강변 걷기와 '산을 즐긴다'는 유산(遊山)을 통해 학문의 길을 보여주고자 했다. 청량산은 12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소금강으로 꼽힐 만큼 수려한 경관을 지녔다.
낙동강은 예천 삼강에서 내성천과 금천을 받아들인다. 서울로 향하던 선비, 보부상, 뱃사공, 나루터 인부 등 많은 사람들이 삼강에서 모이고 또 거쳐 갔다. 내성천 물줄기가 휘감아 도는 물돌이 마을인 회룡포가 있다. 하류로 더 내려가면 하늘이 스스로 만든 경치라고 해 자천대(自天臺)로 불렸던 상주 경천대가 있다.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진남교반을 지나는 영강의 물길은 산새를 닮았다. 태극 모양의 지형을 따라 강은 얹히듯 가벼운 흐름으로 태극을 그렸다. 물길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절경의 계곡이 있다. 문경 가은읍 대야산(931m)의 용추계곡과 선유동계곡의 맑은 물은 울창한 숲과 조화를 이룬다. 바위 위를 미끄러지듯 물이 흘러 천연의 물 미끄럼틀을 만들어 놓았다.
청송군을 흐르는 길안천의 백미는 안덕면 고와리의 백석탄이었다. 활짝 핀 꽃잎 모양의 바윗덩어리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람, 강에 살다
사람들은 강을 따라 삶을 일구었다. 그 흔적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동 풍산읍 마애리 낙동강변에서 주먹도끼, 찌르개 등 구석기 유물들이 출토됐다. 김천 구성면 송죽리 감천변에서 빗살무늬토기, 돌촉, 돌도끼 등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 유물이 나왔다. 강이 가져다준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고대 국가들이 생겨났다. 상주시 사벌면 화달리 사벌평야 일대에는 고대 삼한의 소국인 사벌국이 있었다. 의성에는 조문국의 흔적인 고분이 널리 퍼져 있다. 고령은 대가야의 수도였다. 대가야는 철을 바탕으로 무기와 농기구를 생산하며 성장했다.
강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전쟁의 정점에 있었다. 칠곡군 낙동강은 한국전쟁 최고의 격전지였다. 물밀듯 내려온 북한군에 맞서 한국군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상주시 만산동 북천 강변에는 임란전적비가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의 중앙군과 왜병의 선봉 주력부대가 최초로 싸운 장소였다. 낙동강이 지나는 봉화 소천면 화장산 일대에도 임란의병전적지가 있다. 1592년 향토의병 600여 명은 왜병 부대와 격전을 벌이다 모두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강은 소통의 중심지였다. 예천 삼강엔 낙동강에서 마지막까지 문을 연 주막이 남아 있었다. 예부터 사람들은 주막에 머물며 각 지방 소식과 거래 상품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다. 지금의 낙단교 아래 있었던 낙동나루는 원산, 강경, 포항과 함께 조선시대 4대 수산물 집산지로 꼽혔다. 고령 개진면 개포리 개경포나루를 중심으로 1899년 조선의 대표 상단인 '고령상무사'가 설립됐다. 이를 통해 고령 기와와 고령 도자기, 해산물 등을 조선 전역으로 유통했다.
한국 유교문화는 강에서 꽃을 피웠다. 안동 도산면의 도산서원은 조선 최고의 유학자였던 퇴계가 후학 양성에 힘썼던 '성리학의 성지'였다. 낙동강 3대 발원지 가운데 한 곳인 죽계천은 한국 유교문화의 고향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임금이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린 서원)인 소수서원이 죽계천을 끼고 있다. 퇴계는 이곳에서 직접 제자를 가르치며 자신의 학맥을 형성했다.
강의 아름다운 풍경은 문학으로 재탄생했다. 1196년 백운 이규보는 상주 낙동강에 배를 띄우고 시회(詩會)를 열었다.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시인과 소설가가 반변천 곁에서 꿈을 키웠다. 지조론과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 출신이고, 소설가 이문열도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두들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강과 사람, 다시 만나다
낙동강과 지류를 끼고 있는 시'군들은 강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각 시'군들은 저마다 지역의 자연경관과 역사문화를 특성화하고 있다. 장점은 살리고 부족한 점은 보완하면서 수변 관광지를 조성하고 있다.
봉화군은 보존된 산림을 바탕으로 낙동강변에 경관 숲을 만들어 선비산수 탐방로로 활용할 계획이다. 안동시는 부족했던 숙박시설을 늘리기 위해 안동문화관광단지를 조성해 '머무는 관광지'로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예천군은 삼강주막이라는 대표 브랜드를 그대로 살린 체험관광지를 꾸미고 있다. 상주시는 낙동강을 하나의 투어벨트로 엮어 관광 경쟁력을 극대화하려 한다. 구미시는 수변레포츠 시설을 위주로 강변을 활용하면서 야외공연장, 미술관, 놀이공원 등 문화예술시설을 더해 도시민들에게 적합한 수변공간을 조성하려 한다. 칠곡군은 전쟁의 역사를 승화해 호국평화 공원을 만들고 세계평화축전을 열 계획이다. 고령군과 성주군은 가야라는 공통의 역사문화를 활용한 테마공원을 준비하고 있다.
송재일 대구경북연구원 지역관광팀장은 "지역에 흩어져 있는 관광자원들을 얽어매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선 누가 어떤 경로로 찾아오고 또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고 어떤 상품을 사 가는지 알 수 있는 통계와 설문 자료가 확보돼야 한다. 그래야 관광 수요자들의 섬세한 수요를 파악할 수 있고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도농교류를 넘어서 지역 간의 소통의 끈을 잇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령 대구의 한 지역 공동체가 낙동강 주위의 관광지와 인연을 맺게 해 연계의 고리를 만들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지역끼리 단절된 관광 인프라를 묶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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