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마을 돌담길 너머 제주 해녀 나타날라?

입력 2012-10-24 07:34:08

가을의 절정, 군위의 절경

# 50년 전 이발소·연탄가게…옛 산성中 추억 창고 볼 만

#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역 '찰칵' 객차서 만든 레일카페서 '조잘'

만산홍엽(滿山紅葉)에 낙엽이 소소히 내리기 시작한다. 추억과 낭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련함이라도 느끼고 싶다. 그렇지만 날씨도 추워지는데 힘들게 먼 길을 떠나긴 부담스럽다.

가까운 곳에서 낭만을 즐길 곳은 없을까. 팔공산 너머에 그런 곳이 있다. 아늑하면서도 옛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마을이다. 내륙에서는 찾기 어려운 고택과 돌담이 있고 추억과 낭만을 즐길 수 있는 화본역과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 세트장, 맑고 깨끗한 환경, 산촌생태마을, 청정농산물 등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다. 인각사와 삼존석굴, 산촌생태마을, 군위댐 등은 덤이다.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군위군 산성면 화본리 옛 산성중학교에 마련된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는 추억'낭만을 보관하고 있다. 군위군청과 화본리 주민들이 함께 교실 대여섯 개 정도의 작은 건물을 새롭게 단장해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다.

넓은 운동장에 들어서자 굴렁쇠 놀이를 하고 자전거 마차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뽀얀 먼지가 이는 운동장이 영락없는 시골학교 풍경이다. 교실 문턱을 넘는 순간 50년 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교실 2개의 공간을 합쳐 하나의 동네로 만들었다. 공중전화가 딸려 있는 동네 어귀의 구멍가게를 비롯해 전파상과 만화방, 이발소, 연탄가게 등이 골목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저녁 무렵, 골목을 비추고 있는 희미한 가로등이 아련하다.

골목 모퉁이 연탄가게에는 연탄에 집게가 그대로 꽂혀 있다. 가게 위에 시커먼 물체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검은 고양이 네로'가 지붕 위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다. 자세히 보니 인형으로 만든 고양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밀하게 알차게 준비된 곳이다.

모퉁이를 지나면 공동화장실이 나온다. '뒷간 열어보실래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문을 열자 안에서 볼일(?)을 보던 아이가 깜짝 놀란다. 자세히 보니 인형이다. 엉덩이를 드러내 놓고 있는 이 아이가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란다.

골목 반대편에는 당시의 교실이 재현되어 있다. 교실에는 육중한 나무 책걸상과 분필가루가 날리던 칠판이 있다. 세월의 흐름을 담고 있는 추억의 소품창고에는 '포니' 자동차와 타자기, 아이스케키통, 잡지와 포스터 등 다양한 소품들이 비치돼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입장료 어른 2천원, 청소년'어린이 1천500원이고 365일 개방한다.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역

요즘 잇따라 방송을 타면서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193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데다 수려한 주변경관과 잘 어울려 네티즌이 뽑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선정될 정도다. 지금은 경북관광 순환테마열차를 포함해 상'하행선 하루 세 차례씩 총 여섯 차례 정차한다. 대합실에는 마을 주민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옛 사진들이 걸려 있다.

올망졸망한 볼거리도 많다. 역사 옆에는 박해수 시인의 '화본역' 시비가 있다. 시비 앞에는 커다란 이야기책이 놓여 있다. 삼국유사의 내용을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놓은 책이다. 역 옆에는 아름드리 나무와 사람들이 찾아와 앉아주기를 바라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에 제격이다.

화본역엔 항상 정차해 있는 열차가 있다. 화본역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마련된 레일카페다. 객차를 개조해 만든 이곳에서는 차를 마시며 오붓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피곤하면 잠시 카페나 소극장에서 눈을 붙여도 괜찮다. 편안한 의자가 마련돼 있다. 선로 옆 이끼가 끼고 담쟁이덩굴에 둘러싸인 급수탑은 독일 동화 '라푼젤'에 나오는 탑 같다. 철로를 가로질러 급수탑까지 가는 산책로에는 각종 꽃들이 만발해 있다.

◆돌담길 돌아서면~

화본역에서 10여㎞를 달리면 한밤마을이 나타난다. '육지 속 제주도'로 이름난 곳이다. 마을 전체가 돌담길이다. 그만큼 제주도처럼 옛 돌담의 모습이 잘 간직돼 있다는 얘기. 팔공산의 바위와 돌로 뒤덮인 땅을 일구며 살아야 했던 옛 한밤마을 사람들이 자연스레 돌로 집의 담장을 두른 데서 지금의 '육지 속 제주도'가 완성된 것이다.

돌담길 탐방은 크게 마을 사이의 도로를 기준으로 모두 세 곳에서 진입할 수 있다. 어느 곳으로 들어가든 한 바퀴를 도는 구조다. 수백 년 풍파를 견뎌낸 돌들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켜켜이 층을 이루고 있다. 돌담길 사이사이의 나무와 이름 모를 꽃과 어우러져 이국적 풍경을 자아낸다. 돌담길은 미로와도 같다. 넓었다가도 사람 몇몇만이 지나는 길로 좁아지기도 한다. 어떤 길은 구불구불 미궁 속으로 빠져들 듯한 형국이어서 자칫 넋을 놓고 가다간 길을 헤매기 일쑤다.

마을 안 상매댁(남천고택)은 마을에서도 규모가 가장 큰 고택이다. 기자가 찾은 날. 운 좋게 집 앞 골목을 청소하는 집주인을 만나 잠시 구경할 수 있었다. 안채와 사랑채, 사당으로 구성돼 있고, 자연석 돌담이 경계를 이뤄 옛 고택의 정연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집안 곳곳은 보면 볼수록 깊고 신기하다. 상매댁 인근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잘 보존된 누각형 집이 턱 하니 버티고 있다. 경북도 유형문화재 262호인 대율리 대청이다. 대청 주변도 역시 돌담이 감싸고 있다. 잠시 대청에 앉아 쉬다 보니 상념이 밀려온다.

★가는길=중앙고속도로 군위IC에서 내리면 바로 오른편에 간이휴게실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는 대형 군위군 관광안내도가 비치돼 있어 목적지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보중학교로 방향을 잡은 후 우보역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서 지방도를 따라가다 보면 화본역에 닿는다. 화본역에서 부계면으로 10㎞ 정도 가면 돌담마을이 나온다. 이곳까지 구경했다면 대구로 돌아오는 길은 팔공산을 넘는 길이 낫다. 팔공산 한티재까지 15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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