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번 수술…마지막 기회 잡고 싶습니다
22일 만난 이영일(가명'60) 씨는 점심을 막 끝낸 뒤였다. 이 씨의 밥상에는 빈 사발과 간장 한 병, 그리고 약봉지와 물컵이 놓여 있었다. "속이 좋지 않은데다 반찬 살 돈도 없어 매일 흰 죽에 간장을 조금 넣어 먹는다"는 이 씨는 이날도 죽으로 한 끼를 때웠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간암을 앓고 있지만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와 점점 밀려가는 영구임대아파트 임대료와 관리비, 본인의 간암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이 씨는 마음 편히 누워 있지도, 잠을 자지도 못한다.
◆사기, 이혼 그리고 사업 실패
이 씨는 1992년까지 호텔, 오락실 등에 음료수 등을 납품하면서 괜찮은 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이 씨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과 꼬임에 다른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기를 당했다. 그 후로는 하는 일마다 실패와 사기의 연속이었다. 식당을 차려도, 가게를 열어도 모두 실패였다.
이런 중에 아내도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나버렸다. 결혼 생활 15년째이던 1995년, 아내는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을 요구했고 이 씨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혼 후에도 손대는 일마다 계속 실패했고, 이 씨는 깊은 상실감으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생겨 시골로 숨어들었다. 경북 영양에 있던 지인의 집에 기거하며 날품팔이를 하며 삶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방황의 삶을 살던 2003년. 이 씨의 가장 친한 친구가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 씨에게 홀몸노인을 위한 목욕봉사를 같이 하자고 권했고 이 씨는 이를 통해 재기할 용기를 얻었다. 게다가 때마침 미국에서 여동생과 같이 살던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여동생이 챙겨준 사업자금 1억원을 이 씨에게 건네며 "이번에는 꼭 성공하라"며 힘을 북돋워주셨다.
하지만 재기는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여동생이 챙겨준 사업자금으로 다시 식당을 차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했다. 이 때문에 이 씨는 사업자금을 대 준 여동생과 사이가 멀어졌고, 몇 번의 큰 다툼 끝에 연락조차 하지 않게 됐다. 이 씨는 "어머니는 제 뒷바라지 때문에 미국 영주권도 포기하고 한국으로 오셨는데 어머니께 항상 죄송하다"고 말했다.
◆피해갈 수 없던 간암 가족력
어릴 적 이 씨의 아버지는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건강했던 남동생도 지난해 간세포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씨도 남동생과 똑같은 종류의 암을 앓고 있다. 1996년부터 앓기 시작한 간경화를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이 씨는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였기 때문에 내 몸 상태가 어떤지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며 "이렇게 간암으로 확장될 줄 알았다면 더 착실하고 안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했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씨가 앓고 있는 암은 간세포암으로 암세포가 한 곳에 뭉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동시에 발생해 고통을 주는 암이다. 올해 4월에 간세포암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건소의 긴급의료지원비 200여만원을 받아 수술했지만 6월에 재검사를 한 결과 다른 부위에 암세포가 다시 생겨 재수술을 했고, 이후 시행한 검사에서 또다시 암세포가 발견돼 세 번째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한 검사에서 수술하기 가장 까다로운 간동맥 근처에 다시 암세포가 발견돼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 씨는 그냥 하루하루 약으로 버티고 있다. 이미 모아둔 돈은 세 번의 암 수술로 다 써버렸고, 국가 지원도 보건소 긴급의료지원금이 1회밖에 지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술을 하면 그나마 희망이 있다는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나 약값을 제외하고도 수술 등 치료에 부담해야 하는 돈이 200만원 안팎이랍니다. 더 이상 돈이 나올 데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따름입니다."
◆어머니께는 항상 죄송한 마음
이 씨의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는 어머니를 인근 복지관에 모셔다 드리고 모셔 오는 일이다. 복지관에서 보내주는 버스가 있지만 어머니가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앓고 있어 제대로 걷지 못하는 탓에 버스 타는 곳까지 갔다가 오는 것도 일이다. 어머니의 류머티스성 관절염은 한국에 올 때부터 앓고 있었지만 이 씨와 지내면서 더 심해졌다.
게다가 이 씨의 어머니는 지난해부터 이유없이 멍해지거나 기억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갑자기 "내 옷을 누가 내다버렸느냐"며 옷장을 뒤지기도 했다. 아침저녁으로 밥상을 차려드리면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는 일도 잦아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우울증이 매우 심한 상태"라고 했지만 이 씨는 어머니의 증상이 치매 초기증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걱정이 크다.
"어머니께 가장 죄송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어머니도 아프시고 정신도 온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도 어머니가 가끔 음식을 못 드시거나 이상한 행동을 보이면 짜증을 낸다는 겁니다. 짜증을 내고 나면 뒤돌아서서는 '이게 아닌데' 하며 후회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 씨는 어머니께 항상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든 만회하고 더 잘 모셔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머니를 복지관에 모셔다 드리고 데려온다. 오전 7시에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 씨는 그보다 더 일찍 일어나 어머니의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자신도 중병을 앓고 있어 일어나기 힘들지만 어머니를 위해서 꼭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이 씨는 자신 앞에 놓인 관리비 고지서와 영구임대아파트 임대료 독촉장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씨는 "관리비가 밀려 단수될 뻔한 것을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자신과 어머니가 극복하기 힘겨운 상황에 몰려 있지만 절망만 하고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제가 앓고 있는 암은 완치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간암을 극복해 어머니와 함께 더 열심히 살아보고 싶습니다. 10년간 저를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신 어머니께 꼭 보답하고 싶습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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