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광장] 여자, 그 상상 불가능한 것.

입력 2012-10-23 11:10:00

일상에는 여러 어려움이 있다. 이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성장하면서 그리고 다 성장했다고 믿는 사람에게도 여전히 어려움은 따라다닌다. 예전 시대에 여자에게 참정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아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 조카에게는 얼룩말 무늬의 티셔츠를 입는 것이 참정권 문제만큼이나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같은 얼룩 무늬라도 호랑이 무늬는 괜찮은데, 얼룩말 무늬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설거지는 괜찮은데, 걸레질은 저항이 생긴다.

나를 포함해서 다들 왜 저러나… 싶은 것이 있는 것이다. 합리적 근거는 당연히 없고, 그래서 이해할 수 없고, 그 근거도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은 너무나 다양하며, 그 일을 해야 하거나 하기를 강요당할 때 말 그대로 '대격돌'이 벌어진다. 이런 대격돌은 다반사로 아주 치사하고 미미한 일로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보통 습관의 문제로 '퉁치고' 넘어간다. 사실 이것은 습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사는 가정, 내가 사귀는 동무들, 그 동무들과 함께 사는 사회 등등으로 확장해 나가다 보면, 있을 수 없는 일, 상상할 수 없는 일은 모든 습관, 모든 사회적인 통념, 제도의 허용이나 금지, 당대의 기준, 이 모든 것이 작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 '여자는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문제였다. 남녀 간에 서로가 상상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일은 '사랑'이나 '연애'라는 주제로 인류사 전체를 거쳐 고민해 오던 것이 아니던가. '도대체 무엇이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은 단적으로 '소통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상상하고, 상상하라'라는 말은 내게는 없는 것, 즉 '나'로서는 상상 불가능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내게 빠져 있으므로, 그래서 나의 한계는 나이므로, 나에게 불가능한 것은 반드시 나의 외부에서 알려주는 것이어야 하고, 이를 알려주는 방식은 모질고 가혹하게도 '나의 실패'로 나타나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학교에서 배운 경구가 이렇게도 깊은 의미가 있는지 그야말로 머리가 굵어질 만큼 굵어져서야 알게 되니! 그러니 이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속사정이야 억울함 일색일 뿐일 게다. 그래서 '현재 내게 무엇이 상상 불가능하단 말인가?'라는 질문은 도무지 소통이 안 되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묻고 이를 해명하는 일이다.

이런 '나의 실패'를 미학적으로 가장 우아하게 설명한 것이 '숭고'가 아닌가 싶다. '숭고' 하면 대부분 가슴 한쪽에 어떤 이미지나 감(感)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숭고'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숭~' 하고 깊숙하게, 텅 빈 바닥처럼 뭔가 심연으로 떨어지는 느낌 아닌가. 그 끝을 끝내 감당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을 전체로 그려볼 수 없는 것, 그래서 인간은 그에 무력감을 느끼게 되는 것, 이것이 숭고라는 감정의 기본 틀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예배당에서, 우리의 어머니들 앞에서 다함이 없이 너무 큰 것과 대면한 이런 숭고함의 대상은 우리가 경험에서는 얻어질 수 없는 대상, 신이라든가, 죽음이라든가, 선함과 같은 어떤 이념이라든가 뭐 이런 것들이다. 그래서 신에게 봉헌할 때, 죽음을 깊이 성찰할 때, 어떤 완전함의 이념에 대해 실천을 비추어볼 때 숭고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미적인 감정으로서의 숭고가 일상에서는 보통 이해 불가능의 문제로서 대격돌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 민주주의에서 여자의 참정권 문제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면, 요즘은 그와 반대로 여러 가지 사회적인 증후나 정황상 여자를 배제한 사유와 실천은 상상할 수 없다. 여자의 분석에 결국 실패했지만 프로이트는 이 문제를 우리 상상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문제로 제시한 데에 그 공로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요즘 여자를 파트너로 소통하는 일은 왜 실패하는지에 대한 말은 별로 없고 화(禍)만 남아 있는 듯하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여자'의 문제는 상상력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차분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남인숙/미학박사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