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 '겨울 나그네'
추석 명절 끝에 오랫동안 거실을 지키고 있던 스트라디바리(Stradivari)를 떠나보냈다. 1년 전, 오디오 가게의 유리창 너머로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면서 몇 번을 망설인 끝에 들인 녀석이라 더 애착이 갔던 스피커였는데 마음 한구석에 서운함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겨우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홀가분했다. 지난 6월부터 정리하기 시작한 오디오라는 집착에서 막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다 정리하고 뭐로 음악을 들으시려고요?" 오디오 마니아들의 과도한 편집증을 잘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스피커를 가지러 왔던 기사가 물었다.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던 집착과 소유에 대해 이제 겨우 조금 벗어나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답이라면 답이었다.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제작자의 이름을 딴, 스트라디바리는 그 이름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재현하는 스피커다. 특히 성악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서 어두운 밤, 불을 끄고 노래를 듣노라면 바로 눈앞에서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오랜 시간 음악을 들으면서 인간의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는 없다고 생각했다. 해서 그 스피커는 때로는 친구로, 또 때로는 연인으로 곁에 있어 주었다.
해서 그것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 욕심에 대한 변명들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도 그것이 사치라는 것에 온당한 변명이 되지 못했다. 100㎏에 달하는 앰프들과 이해할 수 없는 고가의 케이블, 그리고 음향기기들은 취미가 아니라 사치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히말라야였다.
맨발로 두 시간을 걸어 학교로 오는 아이들, 교실이 없어 비가 오면 수업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끄러웠다. 50만원이면 350명의 아이들이 한 달간 점심을 먹을 수 있다고 히말라야의 바람은 전했다. 사람에 대한 예의, 그것은 가지고 나서가 아니라 가지지 않았을 때 지녀야 한다는 부끄러운 반성이 고개를 들었다. 소유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지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빚을 진 셈이다.
결국 고가의 오디오를 정리하고 그야말로 단출한 시스템을 거실에 꾸렸다. 그리고 지난 일요일,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 작은(?) 오디오로 처음 들은 곡은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reise)였다. 슈베르트가 마치 스스로의 심정을 독백처럼 노래한 이 연가곡(원제 겨울여행)은 그 아름다움과는 달리 어둡고 절망적이다. 빌헬름 뮐러의 시 24편에 곡을 붙인 겨울 나그네는 1827년 질병과 우울증 속에서 탄생했다.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고 방랑의 길을 떠나는 첫 곡 '안녕히'를 시작으로 줄기에 사랑의 말을 새겨놓았던 '보리수'를 지나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에 이르기까지 절망에 젖은 청년의 내면이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되어 있다. 슈베르트는 24곡을 완성한 이듬해 31세의 나이로 지독한 가난과 고독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사랑을 잃은 젊은이가 눈보라 치는 겨울에 죽음을 향해 방황하는 겨울 나그네는 어쩌면 슈베르트 자신이 아니었을까? 작은 키와 못생긴 외모로 인해 극심한 자격지심에 시달렸던 그가 구했던 사랑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그는 결국 윤락가를 전전했고 결국 매독이라는 치명적인 성병을 얻었다. 아마도 그는 윤락가를 전전하며 사랑이 아닌 배설의 허무함에 몸을 떨었을지 모른다.
과연 세상에 사랑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사랑의 맹세라는 것은 그 얼마나 부질없는 것일까? 죽음을 향해 치달으면서 그가 작곡에 매달렸던 것은 그가 생각한 사랑에 대한 세상의 시선을 뿌리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가을비가 겨울을 부르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은 자신을 기다린 가을을 덮칠 것이다. 사람들은 맨살을 드러낸 나무들 앞에서 가을이 겨울을 기다린 시간들을 잊을 것이다. 사랑도 그럴지 모른다. 그대가 아니라면 곧 죽을 것 같았던 시간도 그저 찰나와 순간이 된다. 고가의 오디오가 들려주던 소리도 잊힐 것이다. 비우지 않고서야 어찌 채울 수 있으랴. 쉰한 살의 또 가을, 겨울 나그네는 이렇듯 다르게 들려온다.
전태흥 미래티엔씨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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