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장군의 사진 중 교과서에도 실린 유명한 사진이 있다. 바로 태평양 전쟁 때 필리핀 탈환의 첫 작전이었던 레이테섬 전투 후 바닷물에 바지를 적시며 육지로 걸어나오는 사진이다. 1944년 10월 20일 이 장면을 처음 찍은 사람은 프랑스 사진기자 프랑코 브리스크였다. 그러나 맥아더와 부하 셋이 발목 깊이 해변을 걸어나오는 이 사진은 극적 요소가 없어 밋밋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놓친 사진 전문 잡지 라이프의 칼 마이단 기자가 뒤늦게 달려와 맥아더에게 상륙을 재연해 줄 것을 요청했다. 훌륭한 군인이었지만 홍보에도 귀재였던 맥아더는 라이프가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줄 것을 알았다. 이렇게 해서 한 달 뒤 맥아더가 적절히 늘어선 부하 6명을 이끌고 무릎 깊이의 바닷물에서 위풍당당하게 걸어나오는 모습을 담은 그 유명한 사진이 만들어졌다.
맥아더의 예상대로 이 사진은 미국 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맥아더를 용감한 장군으로 각인시켰다. 그 뒤부터 맥아더는 상륙할 때마다 바다에서 걸어나오는 습관을 들이게 됐다. 1945년 1월 19일 필리핀 루손 섬 상륙 때 그는 미리 준비된 부두로 상륙하지 않고 바닷물이 찰랑거리는 모래사장에 뛰어내렸다.
태평양 전쟁 최대 격전지의 하나였던 이오지마(硫黃島) 수리바치 산 정상에서 미 해병대 병사 6명이 성조기를 꽂는 사진 역시 연출이었다. 처음 이 장면을 찍은 사람은 해병대의 카메라맨 루이스 로워리였다. 하지만 그의 사진 속의 성조기는 너무 작아 미국의 승리를 나타내기에는 부족했다. 이 장면을 다시 연출해 불멸의 사진을 만든 사람이 AP통신 기자 조 로젠탈이다. 첫 번째 성조기를 미군 장교가 기념품으로 가져가자 지휘관이 좀 더 큰 성조기를 다시 게양할 것을 명령했고 이 장면을 로젠탈이 촬영한 것이다.
진실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승리했기에 그래도 이는 봐줄 만하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한국군의 연출 시도는 한 숨이 저절로 나오게 한다. 군은 경계 실패를 은폐하기 위해 귀순한 북한군 장교 이철호 씨에게 최전방 초소(GOP)에서 10m 떨어진 곳에서 백기를 흔들어 달라고 했다. 이 씨가 "북한군 추적조에게 저격당할 수 있다"며 거부하자 이 씨가 그곳에서 백기를 흔들었고 우리 군이 그걸 발견한 것으로 해달라고 했다. 당나라 군대가 따로 없다. 이씨의 말대로 이런 군대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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