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별에서 온 아이/오스카 와일드/펭귄 클래식 코리아

입력 2012-10-18 14:18:03

유미주의 작가의 아름답고 슬픈 동화들

# 다양한 형식 넘나드는 작품…유려한 필력 느낄 수 있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저택에 혼자 사는 거인이 정원에서 놀던 아이들을 모두 내쫓아버리자 정원에 봄이 오지 않고 겨울만이 계속된다는 '저만 알던 거인'은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만난 이야기였다.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 그 이야기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라는 것은 훨씬 뒤에 알았다. 눈과 서리, 우박과 북풍만이 계속되는 거인의 정원에서 거인의 마음을 열게 했던 귀여운 아이가 사실은 아기 예수였으며, 여러 해 뒤 그 아이가 다시 나타나 거인을 하늘나라로 데려간다는 뒷이야기도 훗날 읽은 것이다. 물론 거인의 정원에 둘러쳐졌던 높은 담은 이미 없어졌고, 정원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지 오래였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저 먼 남쪽으로 떠나는 제비에게 자신의 몸에 붙어있는 보석 조각들을 떼어내 가난한 예술가와 병든 아이에게 나누어 주라고 부탁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이토록 슬프고 아름다운 동화들을 썼던 오스카 와일드는 사실 아주 짧은 삶을 살다 간 불운한 작가였다.

오스카 와일드는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희곡 '살로메'를 썼던 재능 있는 작가였다. 그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서 유미주의 색채가 짙은 작품들을 통해 개성 있는 작가로 인정받으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한다. 하지만 동성애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출옥 후 그는 파리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젊은 나이에 죽는다.

펭귄 클래식 코리아에서 펴낸 '별에서 온 아이'는 유아용 그림책과 동화책을 통해서만 그의 작품을 접했던 독자들에게 진지한 작가로서 오스카 와일드의 참모습을 느끼게 해주는 단편들을 모은 것이다. '별에서 온 아이'는 나무꾼 부부가 숲에서 갓난아기를 발견하여 데려다 키우면서 시작된다.

아기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소년으로 자라지만, 냉혹한 마음을 가져 자신의 어머니라며 나타난 거지 여인을 쫓아버린다. 그 후 소년의 외모는 두꺼비와 뱀처럼 추해졌고, 소년은 집을 떠나 방랑하며 마술사에게 노예로 팔려 온갖 시험을 거친다. 마침내 소년은 나병환자로 변장해 있던 아버지와 거지 여인으로 변장해 있던 어머니가 왕과 왕비임을 알게 되고, 왕이 되어 강가의 도시를 다스리게 된다. 아이는 사람들에게 자비심과 공평함을 보여 주었고, 가난한 자에게는 빵을, 헐벗은 자에게는 옷을 주었다. 평화가 자리 잡았고 땅은 비옥해졌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다음과 같은 결말을 덧붙인다. "아이는 그리 오랫동안 그 도시를 다스리지 못했다. 고생을 너무 심하게 한 데다 너무 힘든 시험을 거쳤기 때문이었다. 3년이 지나 아이는 죽었다. 그리고 아이의 뒤를 이어 다시 사악한 왕이 도시를 다스렸다."

'나이팅게일과 장미꽃'에서 어린 학생은 아름다운 소녀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고통스러워하며, 소녀에게 바칠 한 송이의 붉은 장미꽃을 갈망한다. 괴로워하는 학생을 본 나이팅게일은 진실한 사랑의 아름다움에 전율하며, 붉은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의 심장을 장미 가시에 찔리는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마침내 나이팅게일의 피를 먹은 장미꽃이 동녘 하늘처럼 붉게 피어났고, 학생은 장미꽃을 소녀에게 바친다.

하지만 소녀는 시장님의 조카한테 받은 진짜 보석에 비하면 하찮다며 눈살을 찌푸렸고, 학생은 분노에 차 장미꽃을 길바닥에 던져버린다. '정말로 사랑이란 아무 쓸모가 없다'며 '이 시대에는 유용한 것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중얼거리며 학생은 다시 먼지 쌓인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이 책에는 사랑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믿고 추구하고자 했으나, 냉혹한 세상에 실망하고 좌절하는 오스카 와일드의 낭만적인 작품을 포함하여, 애틋한 느낌으로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고루 실려 있다.

신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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