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뙤약볕 아래 북새통 국경 통과 행렬
국경수비대 군인들에게 잡혔다. 콘크리트 초소로 끌려 들어갔다. 얼룩무늬 방탄복 차림에 자동소총을 둘러멘 그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등을 떠밀었다. 가이드도 따라 들어오지 못했다. 카자흐스탄으로 입국하려고 아침부터 서둘러 우즈베키스탄의 국경도시에 도착해 수속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초소 안에는 대여섯 명의 군인들이 앉아 있고 카메라를 가리키며 '야퐁인지 쟈퐁인지' 애매한 발음으로 일본인이냐고 물었다. '아엠 코레'라고 하자 그들은 활짝 웃어주었다. 안심이다. 국경초소를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건 당연히 알지, 그런데 출국을 기다리는 동안 수많은 현지인들의 모습을 스케치하며 촬영 각도가 초소 쪽으로 향할 때도 있었다. 젊은 병사가 카메라 뒤 액정모니터를 보며 한 장씩 체크했다.
아침부터 촬영한 목가적인 들녘의 풍경사진들이 모두 날아가는 것 아닌가 내심 걱정되었다. 젊은 세대 군인들은 디지털에 능숙했다. 국경초소의 일부분이 배경으로 찍힌 사진을 나에게 확인시켜주며 두 장만 삭제하고 카메라를 돌려주었다. 일이 틀어지려면 그 정도 혐의라도 서류작성, 심문 등으로 고역을 치를 수도 있다. 그는 엄지손가락을 내세우며 '코리아 굿'이라고 말했다. 악수를 나누고 초소를 벗어났다. 이제 코리아는 먼 실크로드 반대편 변방의 작은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한류의 힘도 있다. 그러나 재외국민과 중앙아시아에 진출한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의 홍보 효과가 누적되어 좋은 국가이미지를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출국하여 카자흐스탄으로 입국하는 육로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길고 긴 차량행렬과 밀려드는 사람들로 북적대는 혼잡한 국경지역이었다. 모든 사람이 차에서 내려 자신의 짐을 직접 소지하고 출국심사를 받는다. 일진이 사나웠는지 여기서 또 걸렸다. 뱀눈을 가진 직원이 따로 불러내 가방을 열라고 했다. 당연히 필요한 소지품밖에 없으니 우려할 바는 없으나 송아지만 한 마약견이 반바지 입은 다리를 핥고 지나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심사대를 통과해 밖으로 나오니 걱정스러운 표정의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국가 간 사이가 좋지 않으면 절차가 더 엄격해진다고 한다. 두 나라의 출입국 심사대 건물이 멀리 떨어져 있어 국경 중간에 완충지대가 있다. 이제 무거운 가방을 끌며 대충 4㎞ 정도를 걸어야 한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40℃를 육박하는 더위로 정신마저 몽롱했다. 이 지역은 양국의 법망이 미치지 못하는 구역이어서인지 온갖 쓰레기가 날리고 집시들도 손을 내밀고 앉아있다. 사진을 찍어야 할 것 같다. 국경수비대 군인들이 볼 것 같아 카메라를 맨 채로 셔터만 마구 눌러 여러 장을 찍었다. 카자흐스탄 쪽에서는 입국심사와 짐 검사가 순조롭게 신속히 진행됐다. 국경 부근에는 양국 간의 가격 차이를 노린 소위 보따리장수 여성들과 환전상들도 보인다. 가방을 옮겨주겠다는 아이들도 '달러 달러'라고 외치며 벌떼처럼 몰려든다. 통관을 기다리는 차들이 줄지어 서 있고, 사람들은 분주히 왔다 갔다 한다. 시장터에 온 것 같은 분위기다.
문제도 발생했다. 여행 동료 중 환자가 발생한 것. 강행군으로 계속된 힘든 스케줄,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등으로 배탈 증세를 보이던 한 명이 한기를 느끼는지 주저앉아 심하게 온몸을 떨었다. 또 한 명은 숙소에 휴대폰을 두고 온 것을 뒤늦게 알고 함께 출국하지 못했다. 다행히 전날 숙소의 종업원이 택시를 타고 국경까지 달려와 분실물을 전해주었고 아슬아슬하게 출입국 심사대 근무시간 전에 통과할 수 있었다. 환자는 병원치료도 받고 한식집에서 죽을 먹으며 회복했다.
중앙아시아 3개국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여행하면서 국경통과를 거듭했다. 해외여행 중 국경통과는 귀찮아도 감내해야만 하는 과정이다. 고대 실크로드가 형성되던 그 옛날에는 국경에 대한 개념이 없었을 것이다. 근대 주권국가가 성립되면서부터 국가 간에 고정된 국경이 생기게 됐다고 한다. 구법의 긴 여정을 나선 삼장법사 현장 스님과 신라 혜초 스님이 다녔던 시절에는 당연히 국경은 없었을 터이다. 현대로 접어들면서 대두된 국가 단위 개념의 형성과 민족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 냉전의 이념 등은 인류 역사를 통해 이어져왔던 교류의 길 실크로드로 하여금 단절과 두절이라는 시련 속에 묻혀가도록 했다. '성을 쌓으면 망하고 길을 놓으면 흥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여행자에게 있어서는 다른 나라에서 또 다른 나라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흔한 경험은 아니다. 여객기를 이용한 공항 입출국이 아니고 육로 이동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장시간의 기다림과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그마저도 '인생 담금질'에 보탬이 됐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행 중 여러 가지 어려움은 있지만 크고 작은 놀라운 것들이 주는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길가에 피어난 사막의 꽃 한 송이가 손을 흔들며 국경통과와 입국을 환영해 준다. 실크로드를 달리며 먼 설산 너머로 불타는 석양과 함께 펼쳐진 장대한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도 힘든 여행에 대한 보상이다.
글'사진: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sije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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