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산행] 낮 산행과 다른 특징은

입력 2012-10-11 14:02:08

랜턴 불빛에 의지해 감각 총동원 '몰입 등반'

가을은 산행의 계절. 하지만 도시 주변 산들은 주말이면 언제나 만원인 등산객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좀 더 쾌적한 산행을 원한다면 방법은 두 가지. 멀리 깊은 산으로 떠나거나, 남들 자는 밤에 산에 오르는 방법이다. 요즘 풀벌레 소리를 벗 삼아 어둠 속 묵언정진하는 '야간산행'이 인기다.

◆발아래 야경에 취하다

이달 4일 오후 7시 30분 대구 앞산 대덕식당 건너편 주차장. '화목산악회' 회원들이 하나 둘 모여들자 장원석(61) 산대장은 스트레칭을 한 후 바로 등산을 시작한다. 산속으로 들어섰다. 숲은 어두웠다. 주위 불빛도 사라져 깜깜하다. 헤드랜턴을 켠다. 구불구불 산길 따라 불빛이 이리저리 춤을 춘다. 가팔라진 오르막 등산로를 오직 랜턴 불빛에 의지해 올라간다. 랜턴 불빛 밖은 마치 길이 끊어져 없는 듯 어둡다. 랜턴 불빛이 조금씩 전진하자 길도 야금야금 나타난다.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풀벌레 소리, 이름 모를 새들의 울음소리가 귀의 감각을 깨우고 시원한 바람이 살갗을 긴장시킨다. 헉헉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땀방울이 온몸을 타고 흐르자 잠자고 있던 오감이 깨어난다. 대낮의 산행이 눈으로만 느끼는 것이라면 야간산행은 귀와 코, 살갗을 총동원해 몸속의 야성을 되살아나게 한다. 물소리,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줄기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저절로 자기 자신에 집중하게 된다. '몰입'이다. 그동안 소원했던 내 속의 나와 대화를 시작한다. 잠시 쉬면서 산정의 바람을 상상하며 다시 다리에 힘을 모아 올라간다.

휘황찬란한 도시의 밤도 발아래다. 낮처럼 북적대지 않아 호젓한 산길, 여유가 있다. 여유를 느끼다 보면 일행은 저만치 앞서가고 없다. 오싹한 밤기운, 어둠이 주는 공포에 다시 발길을 재촉한다.

최고의 난코스는 암벽구간. 가파른 암벽을 조심조심 한 발짝 한 발짝 오른다. 조심 또 조심, 잔뜩 긴장하고 다리엔 힘이 들어간다. 어둠의 장막이 쳐진 숲길, 평소에 자주 올랐던 앞산이지만 밤에는 아주 낯선 세상이 그곳에 있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다. 그때 "산에선 마음이 앞서면 절대 안 돼요. 마음이 앞서면 발이 따라오지 못해 빨리 지칩니다." 팀을 이끄는 장 산대장이 제동을 건다. 이따금 회원이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는 소리도 들린다.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숨은 가빠오고 허벅지는 팍팍하게 굳어 온다. 남은 힘을 쥐어짜 가파른 등산로를 치고 오르니 정상이다. 등운정, 마천각 쉼터를 지나 전망대에 이르렀다. 야간산행은 호젓함 외에도 야경이라는 커다란 매력을 갖고 있다. 낮에는 그저 위압적이기만 했던 고층 빌딩과 아파트 군락들이 빛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낸다. 팔공산 쪽 불빛이 어둠 속에서 보석처럼 빛난다. 갓바위 가로등이다. 아름다운 두류타워도 보이고, 동서변동 불빛도 선명하다. 대구야구장에선 정규리그를 우승한 삼성의 우승 축포가 밤하늘을 수놓는다. 밤이 깊어지니 불빛도 많이 잦아들었다.

이제는 하산해야 할 시간이다. 내려올 때도 오를 때만큼이나 힘들다. 체육공원을 거쳐 다시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10시 30분이었다.

손영희(50'대구 남구 봉덕동) 씨는 "야간산행은 백두대간'낙동정맥 종주 등에 비해 또 다른 맛이 있다"며 "앞산은 오르기 쉽고 대구시내의 야경까지 한눈에 볼 수 있어 야간산행지로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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