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간호사 독일선수단 "대한민국은 우리의 Stolz"

입력 2012-10-11 11:14:16

동포 2세와 함께 골프·볼링·축구 등 참가…"고향인 대구서 전국체전 열

10일 오후 숙소인 영남대 게스트하우스에서 하영순 재독선수단장이 대구시 관계자로부터 환영 꽃목걸이를 받은 뒤 포옹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10일 오후 숙소인 영남대 게스트하우스에서 하영순 재독선수단장이 대구시 관계자로부터 환영 꽃목걸이를 받은 뒤 포옹하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산업전사요? 이제 민간 외교관이라고 불러주세요. 대구를 독일에 알리겠습니다."

10일 오후 7시쯤 영남대. '재독동포선수단 방문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린 게스트하우스로 2대의 대형 버스가 들어왔다. 버스에서 내린 이들은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서로 반갑게 안으며 안부를 확인했다. 이들 82명은 제93회 전국체육대회에 참가하는 재독동포선수단과 응원단이다. 골프와 볼링, 축구 종목에 참가하는 선수들 상당수는 동포 2세들로 이뤄졌다. 선수단을 이끈 임원과 응원단 등 40여 명은 1966년부터 1978년까지 독일에 파견됐던 간호사와 광부들이다.

◆"'백의의 천사'로 불렸지만 늘 조국이 그리웠어요"

1차 파독 간호사인 재독동포선수단장 하영순(68'여) 씨는 "여유가 생기고부터 한국에 자주 오고 있지만 올 때마다 고국의 발전상을 보고 놀란다"며 웃었다.

하 씨는 1966년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서 자리 잡기 위해 그는 틈틈이 독일어를 배우고 업무를 익혔다. 하 씨는 "함께 파견된 간호사들이 늘 웃으며 친절하게 환자를 돌보는 데다 주사 놓는 실력도 독일 간호사보다 낫다는 평가가 계속되자 환자들 가운데 '한국 간호사가 최고'라고 외치며 독일 간호사를 거부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서 봉급으로 4천800원을 받았는데 독일에서는 8~10배쯤 되는 돈을 받다 보니 월급의 90% 이상을 한국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하 씨는 처음 3년 계약이 끝나고 한국에 와서 결혼할 계획이었지만 독일에 파견됐던 광부인 남편을 만나 그곳에 정착하게 됐다. 20년 동안 독일 병원에 근무하고 퇴직한 뒤 프랑크푸르트에 큰 가게를 열어 이제는 면세물품을 판매하는 수출 무역업을 하고 있다.

그는 "파독 당시엔 한국이 너무 가난한 나라였는데 독일에서 삼성, LG 같은 한국 대기업 제품을 만나고 경제성장 소식을 접하니 힘이 절로 난다"며 어깨춤을 췄다.

◆대한민국은 우리의 'Stolz(자존심'자랑)'입니다

대구 국군군의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이후 대구 방문이 40년 만에 처음이라는 재독대한체육회 회장 김원우(67) 씨는 1973년 파독 광부 가운데 1명이다. 그는 1973년 1월 독일에 도착해 다음날 바로 루르 지방에 있는 지하 탄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탄광에 있는 기계들은 체격이 큰 독일인에 맞게 설계돼 있어서 체구가 작은 동양인이 다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힘으로 안 되는 일은 꾀를 내서 하다 보니 금방 익숙해졌다.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했던 독일에서 근면'성실한 한국 광부는 어디에서나 환영이었고 덕분에 한국에 대한 이미지도 좋아졌다.

김 씨는 "고국에 있는 형제들이 좋은 여건에서 공부하고 가족들이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다"면서 "처음에는 쌀과 우유를 섞어 볶은 점심이나 깍두기 한 점 없이 먹어야 하는 빵 등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 고생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주말이면 외로움을 달래고 한국 음식을 먹기 위해 간호사가 있는 기숙사에 가서 밥을 얻어먹다 보니 함께 파견된 간호사와 결혼까지 하게 됐다. 자녀를 낳고 한국에 들어올 생각이었지만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한국행이 쉽지 않았다. 한국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재독 동포 2세들이 한국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1981년 뜻있는 부모들과 주말 학교를 만들어 한글 교육을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해 여름마다 한국을 찾았다.

김 씨는 "처음 독일에 갔을 때 'Gold Star' 간판만 봐도 흐뭇했는데 매년 방문할 때마다 발전하는 한국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저에게 대한민국은 Stolz(독일어로 자존심'자랑)입니다. 우리는 비록 가난한 나라의 일꾼으로 갔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가 됐어요. 성장하는 조국을 볼 때마다 독일에서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번 선수단 중에는 대구경북이 고향인 파독 간호사, 광부도 있다.

영주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대학 졸업 후 광부로 파견됐다는 재독 영남향우회장 김상록 씨는 "전국체전이 대구에서 열린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달려왔다"고 말했다. 포항에서 태어나 경북대병원에서 근무하다가 독일에 파견됐다는 선수단 부단장 박소향 씨도 "체전에 참가하면서 고향인 대구경북을 보여주려고 데리고 온 아들이 한국의 자연을 보고 좋아해서 아주 기쁘다"고 말했다.

이지현기자 everyda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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