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산바'가 내륙을 관통하여 지나갔다.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언제 태풍이 왔었던가 의아심이 들 만큼 청잣빛 하늘이 싱그럽기 그지없다. 산바는 광란의 삼바 춤을 추면서 산천의 요소요소에다 엄청난 생채기를 남겼다. 칼자국이 난 듯 벌건 속살을 드러낸 산자락, 종잇장처럼 구겨진 자동차, 갈기갈기 찢기고 뜯긴 길들이 그의 위력을 말해주고 있다.
처음에 태풍이 온다는 기상예보를 보면서 '아르바이트'를 '알바'니 '먹고 튀다'를 '먹튀'로 줄여 쓰듯이 줄임말 좋아하는 우리 식대로 '산바'가 그저 '산들바람'이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산들바람처럼 산들산들 불어와 지난여름 대지를 펄펄 달구었던 무더위나 실어 갔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 소망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짓궂게도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온 산하를 할퀴어 놓았다. 그로 인해, 몇 해 전 수조 원대의 피해를 남겼던 '매미'에 버금가는 손실을 입혔으니 야속하기 짝이 없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했던가. 태풍 볼라벤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또다시 감당하기 힘든 재변을 안겨 놓았으니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닌가. 그저 하늘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망연자실'이라는 말밖에 딱히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다. 피해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삶의 터전을 새로 일구려 복구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수재민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태풍이 물러가고 난 다음 날, 지인의 별장이 이번 태풍에 참화를 입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산골짜기 계곡을 끼고 있어 운치를 더해주던 절경이었다. 찾아오는 사람들마다 빼어난 풍광에 반해 감탄사를 연발했던 곳이다. 수십 년간 공들여 가꾼, 말 그대로 그 그림 같았던 휴양지가 하루아침에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전화위복'이 아니라 '전복위화(轉福爲禍)'라고나 할까. 언제라도 화가 변해서 복이 되고 복이 바뀌어 화가 될 수 있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임을 생생히 깨우쳐주는 인생의 교육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 맑고 공기 좋은 명산의 계곡 근처에다 그림 같은 별장을 갖고 싶은 꿈을 그리며 산다. 하지만 이번 일로 보면 너무 그렇게 부러워만 할 것도 아닌 성싶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부자라고 자세를 말고 가난타고 한을 마소.' 판소리 흥부가의 한 대목을 떠올리며 재물을 대하는 옛사람들의 오롯한 삶의 자세를 배운다.
지금 형편이 좀 괜찮다고 우쭐대지도 말 것이며 어렵다고 절망하지도 말 일이다. 느닷없이 참화를 입어 실의에 빠져있는 수재민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위로의 말이다.
곽흥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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