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장애우로서 30여년 만에 가수 된 구두수선공 박용길 씨

입력 2012-10-08 10:15:43

가요제 3번 도전 끝에 받은 가수증 "꿈이뤄 행복"

가수의 꿈을 실현한 박용길 씨가 망치를 들고 구두 수선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가수의 꿈을 실현한 박용길 씨가 망치를 들고 구두 수선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청소년 때 꿈이 가수였습니다. 30여 년 만에 가수증을 받고 보니 정말 꿈만 같아요."

대구 수성구 동아백화점 수성점 맞은편 골목에서 10여 년째 구두수선점을 운영하는 박용길(51) 씨. 키 130㎝ 단신에 몸무게 30㎏의 왜소한 척추 장애인인 그가 최근 열린 장애인문화복지진흥회 주최 제6회 장애인가요제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받았다.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11명과 열띤 경쟁을 펼친 그는 강진의 노래 '화장을 지우는 여자'로 1위를 차지해 한국가수협회로부터 가수증을 품에 안았다.

"가수가 되고 싶어 장애인 가요제에 3번이나 도전했어요. 예선 후 매일 연습을 하느라 목까지 쉬어 걱정을 많이 했지만 저의 노래를 좋게 봐준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의 노래 장르는 트로트이고, 4㎡도 안 되는 작은 BBS 구두수선점이 노래 연습실이다. 구두 수선 작업대 옆에는 빛바랜 카세트 1대와 작은 TV가 유일한 노래친구다. 평소 구두 수선을 하다가 무료하면 음악CD를 틀어 노래를 부르거나 TV의 음악채널을 시청하는 게 노래 배움의 전부다.

"트로트는 고개를 까딱까딱 흔들면서 불러야 제맛이 납니다. 트로트 중 '아미새', '시계바늘', '사는 동안', '연하의 남자' 를 좋아합니다. 한 번 들었다하면 트로트 노래는 거의 다 부를 수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 가수의 길을 걷기 위해 가요교실에 참가해 음정'박자 교정 등 레슨을 받을 예정이다. 그런 후 양로원 등 복지시설을 방문해 어르신들에게 멋진 노래 선율을 선사하겠다는 것.

그는 동네에서도 마음씨 곱기로 소문이 나 있다. 하루 구두 수선 벌이가 수 만원밖에 안 되지만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는 구두 수선을 무료로 해주고 1, 2천원의 적은 수선비는 아예 받지 않기도 한다.

박 씨의 구두수선점은 동네의 사랑방 역할도 한다. 동네 사람들이 고구마, 빵 등 먹을 것을 갖고 자주 들러 속상한 일을 털어놓으면 박 씨는 직접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그는 장애인 2명에게 2개월간 무료로 구두 수선 기술을 전수해 자립을 이끌기도 했다.

"한 번은 유치원생 20여 명이 구두 수선 체험활동을 왔습니다. 고사리손으로 망치를 들고 뚝딱뚝딱 해보고는 아저씨가 최고의 기술자라며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는 수성구의 장애인 자립 모임인 '장애인 샘터' 멤버다. 장애인 30여 명이 참여하는 이 모임에서 그가 제1호로 자립했다. 지금도 그는 '장애인 샘터' 활동을 하면서 양로원을 방문해 고장난 열쇠를 고쳐주는 등 사랑을 전하고 있다.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게 저의 신조입니다. 구두 수선 하나라도 정성껏 친절하게 최선을 다합니다. 요즘 돈 벌이는 적지만 아프지 않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용길 씨는 구두 수선을 하며 가수의 꿈을 실현한 데는 소아마비 장애인인 아내의 살가운 내조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고마워했다.

김동석기자 dotory1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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