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시간 연장, 야권 "더 많은 국민 투표하도록" 여권 "낮은 투
투표시간 연장 문제를 놓고 여야 간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한 쪽은 '국민 참정권' 확대를 위해 투표시간 연장은 필요하다는 주장이며, 다른 쪽은 '득표용 생색내기'일 뿐이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문제는 대선 정국에서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통합당, 국민참정권 확대?
민주통합당은 역대 대선 투표율이 하락 추세이고 비정규직 등 투표 당일에 일을 하는 유권자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투표시간을 연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에서는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투표시간 연장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답보 상태다. 민주당 측은 "민주당 행안위원들의 활발한 활동에도 새누리당은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윤관석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국민 참정권의 보장을 위해 투표시간의 3시간 연장, 투표일의 법정공휴일화, 재외국민투표 편의 제공, 투표함의 안전성 보장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합의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그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투표시간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백재현 의원은 "지난 번 총선에서 재외동포 5만6천 명이 투표하는데 수백억원의 예산이 들어갔지만, 이를 돈 문제로 환산하여 평가하지는 않는다"며 "돈 보다도 높은 가치인 국민들의 참정권 보장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도 투표 연장에 찬성 의견을 밝혔다. 문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에 "국민의 주권 행사가 쉽고 편해지면 좋은 게 아닌가. 새누리당이 투표시간 연장을 왜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투표할 권리'마저 차별받고 있다. 외국에서도 투표시간을 오후 8~10시까지 하는 나라가 많다. 고칠 건 고쳐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문 후보는 최근 대선캠프에 투표시간 연장을 추진하기 위한 특별본부를 구성키로 하는 등 투표시간 연장을 추진하기 위해 대여 압박 수위를 높였다.
안 후보도 페이스북을 통해 "임시공휴일인 대통령 선거일에도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해야 하는 서비스직 근로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투표 시간 안에 투표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보다 많은 국민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새누리당, 야권의 정치적 쇼?
그동안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새누리당은 얼마 전 이철우 원내대변인을 통해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대선을 코앞에 두고 룰을 바꾸면 상당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으므로 국회에서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민주당이 2002년 16대 대선 이후 투표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을 투표시간에서 찾고 있지만, 지난 대선에서의 투표율 저조는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 등 다른 곳에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투표)시간을 연장하면 투표율이 높아진다는 논리는 24시간 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억지와 무엇인 다른가?"라고 반문하면서, "한국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현행 유지가 50%, 오후 9시까지 연장이 48%로 나왔다. 이 결과는 시간 연장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표시간 연장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된다고 말했지만 연장할 의사가 없음을 공식화한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공보단장인 이정현 최고위원도 4일 "대선 투표일은 공휴일로 지정돼 있고, 오랫동안 유지해온 투표제도의 관행이 있는데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갑자기 (투표시간 연장) 논의를 서두른다는 건 정치적 이유밖에 볼 수 없다"며 "투표는 성의의 문제이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선 후보는 아직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 후보 측 관계자는 "박 후보도 투표시간 연장이 투표율과 직결되지는 않고, 논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선진국들은?
프랑스와 독일은 오전 8시에 투표를 시작해 오후 6시에 투표를 마친다. 오스트레일리아도 똑같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투표 종료시간이 가장 빠른 경우다. 이는 저녁이 되면 인적이 끊기는 등 야간 활동이 거의 없는 이들 나라의 생활방식과 관련돼 있다.
프랑스, 독일의 경우 투표일은 일요일로 정해져 있다. 다른 선진국들은 투표시간이 좀 더 길다. 영국은 오전 7시에 시작해 오후 10시에 투표를 마친다. 이탈리아는 일요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그리고 다음날인 월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이틀에 걸쳐 투표를 진행한다. 무려 23시간 동안이나 투표를 하는 셈이다.
우리와 생활 습관이 비슷한 일본은 오전 7시에 투표를 시작해 오후 8시까지 진행한다. 일본도 프랑스, 독일과 마찬가지로 투표일은 일요일로 정해져 있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저녁 활동이 많은 사정을 고려해 투표시간을 늘렸다. 미국은 주별로 투표시간이 다르다.
한편 한국갤럽이 지난달 23, 24일 만 19세 이상 성인 605명에게 '현행 오후 6시에서 9시까지로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안'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표본오차 ±4.0%포인트, 95% 신뢰수준)에 따르면 '투표 시간을 오후 9시까지 연장해야 한다'가 48%, '오후 6시까지만 해도 충분하다'가 50%로 팽팽했다.
20'30대, 화이트칼라, 학생층에서는 '투표시간을 오후 9시까지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지만, 40대 이상과 주부층에서는 '오후 6시까지만 해도 충분하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민주통합당 지지자(168명)의 65%는 투표시간 연장, 새누리당 지지자(204명)의 70%는 현행 유지를 주장해 지지 정당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무당파(지지 정당이 없는 유권자 226명)에서는 투표시간 연장 52%, 현행 유지 44%로 연장 쪽에 조금 더 힘이 실렸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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