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균형을 거부하는 단순복잡함의 미학
3파전(三巴戰). 셋이서 벌이는 싸움을 말한다. 양자 대결(2파전)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2파전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분명히 이긴다. 하지만 3파전에서는 약자 둘이서 힘을 합쳐 강자를 쓰러뜨리기도 한다. 절대강자는 없다.
또 2파전은 아군과 적군이 분명하다. 하지만 3파전에서는 동맹과 배신 등 복잡한 전략과 술수가 펼쳐지며 어제의 아군이 오늘은 적군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3파전의 양상은 정치'경제'문화 등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속에 생존의 원리가 있다.
◆역사 속 권력의 법칙
3파전이라는 표현은 요즘 신문기사에서 가장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올 12월 19일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권 도전에 나선 박근혜(새누리당)'문재인(통합민주당)'안철수(무소속) 등 3인 후보의 대결을 가리키는 것이다. 사실 3파전은 역사에서 심심찮게 등장한 세력(권력) 간 대결 구도다.
2파전으로 정면 대결을 벌일 경우 전력상 너무 열세라서 당연히 패배할 수밖에 없는 처지의 약자들은 동맹을 맺어 3파전 구도를 펼쳤다. 중국의 삼국시대(위'촉'오)가 우리에게 익숙하다. 촉나라의 유비는 오나라의 손권과 동맹을 맺은 다음 대륙을 호령하던 위나라의 조조를 적벽대전에서 무참히 짓밟았다.
3파전은 단번의 승부를 넘어 세력 간 균형을 오랫동안 지속시켜주는 구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가 대표적이다. 삼국은 700여 년간 흥망성쇠를 공유하며 문명을 꽃피웠다. 결국 신라가 통일을 이뤘지만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니 이후 국제(동아시아) 정세는 통일신라와 발해, 그리고 당나라의 3파전 구도로 재편돼 있었다.
현대의 3파전은 좀 더 진화했다. 자칫 2파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극단적 행동을 방지하는 완충지대를 갖춘 것. 미국과 소련이 2파전(냉전)을 벌일 때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제3세계'라 불리는 세력을 형성했다. 이들은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들이 일방적으로 UN(국제연합)을 주도하는 것을 견제하며 냉전을 녹였다.
◆대선의 흥행코드
이렇듯 3파전은 인류가 문명을 지속하는 데 필수 요소였다. 그런데 역사 속 3파전에는 흥미진진한 '흥행코드'도 담겨 있다. 한 예로 중국의 삼국지는 소설을 넘어 영화와 게임 등 다양한 즐길 거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나라 대선에도 3파전의 흥행코드가 있다. 대통령선거인단의 간접선거로 치러졌던 이전 대선과 달리 국민들이 직접선거를 치르기 시작한 13대 대선부터 14대'15대'16대 대선이 잇따라 3파전 구도로 진행된 것.(17대 대선은 예외다. 2위와 3위 후보의 득표 수를 모두 합쳐도 1위 후보에 미치지 못한 결과를 비롯해 일찌감치 1위 후보가 압도적인 독주를 했다. 그래서 시시한 승부에 전체 투표율도 낮아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표)
대선에서 3명의 후보는 서로 강력한 변수로 작용하며 삼자 대결을 펼쳤고, 3파전을 2파전 구도로 바꾸려는 '후보 단일화' 전략을 펼치기도 하는 등 손에 땀을 쥐는 3파전 구도를 진행했다. 그리고 이번 18대 대선 역시 3파전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최근 언론이 보는 흐름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결 양상이 펼쳐질지는 알 수 없다. 계속 그리고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관심이 고조되면 투표율은 자연스레 높아진다. 3파전 대선 구도를 지켜보는 묘미다.
◆철옹성 시장의 법칙
늘 총성 없는 전쟁을 펼치고 있는 경제계에도 3파전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 이동통신 시장이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의 3파전 구도다. 업계에 따르면 가입자 수(점유율)는 올해 6월 기준으로 SK텔레콤이 2천660만 명(50.3%), KT가 1천648만 명(31.1%), LG유플러스가 985만 명(18.6%)이다.
국내 포털사이트 업계에서는 네이버'다음'네이트가 '빅3'로 불린다.(해외 포털사이트인 '구글' 제외) 3곳 포털사이트의 점유율 합이 90%를 넘고, 구글 외의 나머지 포털사이트는 각각 1%에도 못 미치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3파전의 공통점은 제4자가 끼어들기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 이동통신 시장의 경우 한국모바일인터넷(KMI)과 인터넷스페이스타임(IST) 등 2개 컨소시엄이 제4이동통신 사업허가를 신청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심사에서 기준 미달로 탈락했다. 당시 방통위 관계자는 "포화된 이동통신 시장과 기존 이동통신사의 대응 등을 고려할 때 제4이동통신 사업자가 수익을 낼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과 관련 업계에서는 "제4이동통신 사업자가 가입자 모집 미비나 경영 악화 등을 이유로 소비자 피해를 일으키는 등 업계에 혼란만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내놓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존 이동통신사 3사 간 과점 체제를 해소하고, 요금인하 등 이점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것"이라며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의 제한된 브랜드 인지 성향도 경제계에 3파전을 만든다. 마케팅 전문가들은 "소비자는 광고에서 보통 상위 3개 브랜드 정도만 기억한다. 그중 상품을 고른다"며 "이것이 실제로 브랜드 점유율이나 매출 순위 1위에서 3위까지로 나타난다"고 분석한다.
◆대중문화 속 놈'놈'놈
각종 대중문화에서도 3파전은 흥행코드다.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사랑의 삼각관계는 익히 알려진 멜로 드라마의 필수 요소이다.
3파전 서사 구조의 또 다른 특징은 전통적인 선과 악의 이분법을 적용하기 모호하다는 점.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은 제목만 보면 선과 악과 추의 대결이다. 하지만 극중 배경은 무법천지인 만주이고, 주인공들 역시 지도에 표시된 장소가 가리키는 보물을 얻기 위해 서로 없애려 들 뿐이다. 셋 다 악 혹은 추에 가깝다.
이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미국 서부영화 '석양의 무법자'(1966)에서 먼저 나타났다. 기존 서부영화는 절대 악과 싸우는 절대 선의 '영웅'을 제시했다. 반면 석양의 무법자는 자기 이익과 생존만 추구할 뿐인 '무법자'들의 3파전을 호쾌하게 표현하며 인기를 끌었다.
영화 마니아 직장인 장모(29) 씨는 "뻔한 권선징악 구도보다는 선과 악, 그리고 그 경계의 모호함이라는 '윤리의 3파전' 구도를 펼치는 영화'애니메이션이 더욱 깊고 다양한 철학적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3파전에서는 개인의 능력이 승패를 좌우한다. 그러려면 공정한 대결 환경이 각자에게 주어져야 한다.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 하지만 가상공간에 균형 잡힌 대결의 장을 구축해 큰 인기를 얻은 게임이 있다. 1998년 발매된 '스타크래프트'다.
게임에는 저그'테란'프로토스 등 세 종족이 등장한다. 이들 중 한 종족을 선택해 다른 게이머와 전쟁을 벌인다. 만일 어느 한 종족이 조금이라도 유리한 공격'방어 기술을 갖췄다면 사람들은 그 종족만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세 종족이 균형 잡힌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는 등 문제가 없었다. 이는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게이머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이유가 됐다.
게임전문가 박정규 씨는 "바둑, 장기와 같은 2파전 게임은 구도의 균형을 맞추기 쉽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처럼 3파전 구도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완벽한 균형이 스타크래프트 인기의 핵심이다"고 말했다.
◆'3'(三)은 조화의 수
세상에는 3보다 더 높은 수가 즐비하다. 그런데도 다양한 사회 현상이 단순한 3파전의 구도로 펼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북대 수학과 배용주 교수는 "복잡한 사회 현상을 3파전이라는 단순한 구도로 바라보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양의 한자 문화권에서는 하늘(天)'땅(地)'인간(人)을 의미하는 3(三)이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그래서 사회 현상도 3의 구도로 설명 및 해석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사회 현상 속에서도 "동양철학적으로 보기에 음과 양만으로는 불완전할 수 있으므로 제3의 요소를 추가해 조정 및 견제하는 등 3의 조화를 이루려 한다"고 말했다.
물론 3을 동양에서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 근본 교의인 '삼위일체'와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 제도인 '삼권분립'은 서양에서 왔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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