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通] 해마다 억대 나눔 활동 봉사왕 신홍식 씨

입력 2012-09-29 08:00:00

화가 18명에 오피스텔 작업실 제공 6년째, 예술발전 돕는 건 '나눔의

아트빌리지 대표 신홍식 씨가 25일 달서구 저소득층 가정에 20㎏짜리 쌀을 전달하고 있다. 그는 16년 동안 매달 어려운 이웃 60가정에 쌀을 선물하고 있다.
아트빌리지 대표 신홍식 씨가 25일 달서구 저소득층 가정에 20㎏짜리 쌀을 전달하고 있다. 그는 16년 동안 매달 어려운 이웃 60가정에 쌀을 선물하고 있다.

이달 25일 대구 달서구 월성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아트빌리지 대표 신홍식(58) 씨는 20㎏들이 쌀 한 포대를 차에서 내려 직접 안고 임대 아파트 단지를 돌며 전달했다. 제법 선선한 날씨인데도 신 씨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배달은 땅거미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끝났다. 이날 신 씨는 60여 가구에 쌀을 배달했다. 그는 16년째 매달 이 지역 어려운 이웃들에게 쌀을 선물하고 있다.

장소를 옮겨 달서구 두류 2동 성안오피스텔 16층. 오후 늦게 그가 대표로 있는 아트빌리지에서 다시 만났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그림물감 냄새가 짙게 풍긴다. 800㎡가 넘는 한층 전체가 화가들의 작업실이다. 복도 양 옆으로 나누어진 각자의 공간에서 대구의 구상화가 18명이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를 꿈꾸며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신 씨가 지역 구상 화가들을 위해 마련해준 공간이다. 이 곳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김영대 화가가 인터뷰를 위해 작업실을 선뜻 내줬다. 이 시대 큰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신 씨는 자신만의 나눔철학과 스토리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바깥 날씨는 선선했지만 나눔이야기를 시작하자 금세 온기가 피어났다.

◆봉사에 눈 뜨다.

"20여 년 전 '소련과 국교 정상화가 되면서 사할린 동포들이 대구의 한 양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매일신문 기사를 읽었지요. 마침 추석을 앞두고 있어 '얼마나 고향이 그립고 외로울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그 양로원을 찾아 갔지요." 16년 동안 지역민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해온 '봉사의 달인' 신 씨의 첫 나눔은 이렇게 시작됐다.

"신문을 보고 떡국과 쇠고기를 사서 양로원으로 갔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함께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양로원 측에서 선뜻 만나게 해주지 않았어요. 1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사할린에서 온 동포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그런데 깨끗이 정리된 방에서 그 분들이 고스톱을 치고 있었어요. 한 눈에 봐도 양로원 측이 연출한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단순해 보인 사건이었지만 그에게는 봉사와 기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일대사건이었었다. "기부와 봉사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겉치레나 요식행위가 아닌 봉사, 그리고 복지단체의 배를 불리는 그런 기부나 봉사는 지양해야겠다는 나름의 나눔 철학이 생겼지요." 나눔을 향한 첫 걸음을 떼기도 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몇 년이 지난 후 IMF 외환위기가 찾아왔다. 실업자가 늘어났고 경제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신 씨로서는 그냥 앉아서 지켜볼 수 없었다. "경제가 어려운 이때 끼니를 거르는 가정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신 씨는 달서구에 어려운 이웃 5가구를 선정해 달라고 했다. 그해 신 씨는 매달 20㎏들이 쌀 한 포대씩 모두 다섯 포대를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했다. 직접 자신의 차에 쌀을 실어 배달했다. 양로원 사건(?) 이후 직접 배달하는 일은 지금까지도 그가 고수하고 있는 원칙이다.

다음 해에는 10가구를 선정해 쌀을 전달했다. 그 이듬해에는 15가구를 선정하는 방법으로 매년 5가구씩 늘려 나갔다. 지금은 쌀 지원대상 가구가 60가구에 이른다. 지금까지 그가 전달한 쌀을 액수로 환산하면 2억2천여만원. 이 같은 미담이 서서히 알려졌고 그는 지난달 아너 소사이어티 멤버(자동)로 가입됐다. 대구에서는 5호, 전국적으로는 152호다.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이 되려면 1억원 이상의 고액을 기부하거나 이를 약정해야 한다. 16년 봉사기간 동안 신 씨는 이 기준을 훨씬 초과했다. 더구나 6년째 대구 달서구에 자리한 성안오피스텔 16층의 한 층 전체를 작가들에게 무료로 제공해 창작활동을 돕고 있다. 이 지원도 돈으로 환산하면 매년 1억6천여만원에 이른다.

◆나눔의 씨앗에 뿌려진 '물'

마음에 뿌려진 나눔의 씨앗에 '물'을 준 것은 어머니였다. 신 씨는 요즘 시쳇말로 '엄친아'였다. 그의 아버지는 1960, 70년대 구미에서 알아주는 땅부자였다. 덕분에 남부러울 것이 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당시 집이 구미시장 인근에서 있었는데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이 군인들이 진짜 많았지요. 당시 대부분 집이 그렇듯이 집에 대문을 두지 않았습니다. 지나가던 상이 군인들이나 거지들이 그냥 집으로 들어왔고 어머니는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밥, 된장, 김치 등을 내놓으셨지요."

요즘으로 따지면 노블리스 오블리제((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몸소 실천했던 것. 이를 보고 자란 신 씨가 봉사와 기부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어머니의 나눔을 보고 자라면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길이 따뜻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대들은 계속 싸우는 것만 봐서인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 50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나눔의 유전자는 봉사를 계속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1950년대에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질병을 앓거나 목숨을 잃었던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요즘에도 끼니를 거르는 가정이 너무 많다는 현실 때문에 나눔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눔은 부모가 나서면, 아이들은 따라하는 것'이라는 그는 특히 부모의 나눔실천을 강조한다. "우리 아이들도 많은 것을 나눠 가지면 따뜻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답습하기 때문에 부모가 나서 나눔을 실천하면 아이들도 그대로 닮게 되지요."

나눔을 하다보니 집안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고도 했다. "아내나 다른 가족도 제가 나눔 봉사를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것이죠."

◆문화예술로 봉사 영역 확대

최근에는 나눔의 영역을 문화예술로 확대하고 있다. 20년 간 풍국산업'풍국공업을 운영하다 2004년 그만두게 되면서부터다. 컴퓨터 모니터 사업과 사출업을 해왔던 신 씨의 주 거래처는 창원LG와 오리온전기였다. "창원 LG사장으로 자형이 부임하면서 여러 가지 특혜 의혹(?) 등으로 오해를 받을까봐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죠. 때 마침 오리온전기도 부도가 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정리하게 됐지요."

막상 백수가 되니 눈 앞이 깜깜했다. "20여 년 간 사업에 몰두하다 그만두게 되었을 때는 공황상태나 다름없었죠. 한동안 아무 것도 못했지요. 그러다 미술작품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미술전시장을 오가며 작품을 구매하고 작가들과 친분을 맺게 됐습니다."

화가들의 작품을 하나 둘씩 사들이기 시작하며 소일거리에 나섰던 신 씨는 나눔 본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컬렉터로 화가들의 든든한 지원군에서 한 발짝 더 내디뎠다. 7년 전부터 18명의 화가들에게 작업실을 무료로 마련해주기 시작했다. 이 같은 후원 때문인지 지난해에는 아트빌리지 작가 전원이 인사동 서울미술관 부스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지난 6년간 두 세 명이 짝을 이뤄 초대를 받은 적은 있어도 아트빌리지 작가 모두가 초대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나눔은 신 씨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5년 전부터는 후원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조각을 시작했다. 2007년부터 2년 연속 세계평화미술대전 공모에 참가해 입선하는 등 숨겨진 재능을 발휘했다. 지난해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실에서 정조대왕 화성반차도를 기획했다. 조각가에서 직접 기획자로 나선 것. 서점에서 우연히 보게 된 화성반차도 그림이 깊이 와 닿았단다. 올 연말에는 대구에서 조각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재작년에는 대구문학을 통해 동시작가로 등단했다. 연말쯤 동시집을 낼 작정이다. "동시는 장난을 칠 수 없는 분야입니다. 순수한 입장에서 사물을 보아야 하고 이를 그대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푹 빠졌습니다."

나눔의 예쁜 마음과 예술이 추구하는 미(美)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어릴 때부터 미술과 음악, 문학 등 문화예술을 보고 배우며 자라게 되면 결코 나쁜 심성을 가질 수 없지요. 화가들을 후원하는 저의 활동이 당장 결실을 보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름다운 사회로 나가는 작은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주고 받는 것

'나눔이 있으면 받드시 받는 것이 있다'는 것이 16년 동안 나눔 활동을 하면서 체득한 철학이다. "남 모르게 한다고 해도 하고 나면 뿌듯해집니다. 스스로가 느끼는 보람은 마치 산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지요. 나눔이 보람이 돼서 스스로를 행복하게 합니다. 이보다 더 큰 보상이 어디 있나요."

신 씨는 부자라서 기부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고 강조한다. "물질적으로 나눠 줄 것이 없더라도 재능기부 등 나누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아직도 봉사나 기부를 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는 부유층이 기부를 적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척박한 지역의 나눔 문화가 안타깝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는 계나 친목모임이 많이 있지만 만나서 밥 먹고 노래방 한 번 가면 끝입니다. 나눔에 대한 많은 고민들이 있어야 하고 여럿이 동참하면 나눔 문화를 빨리 정착시킬 수 있습니다."

향후 봉사'기부 계획이 뭐냐는 물음에 "특별히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언제까지 나눔을 할지, 어떻게 나눔활동을 할지 선을 그려놓은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나눔은 앞으로도 진행형이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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