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 이야기] 폐지 모아 통닭 선물 외할머니 '뭉클'

입력 2012-09-28 07:47:29

아침 일찍 외할머니 집으로 가신 엄마가 전화가 왔다. 시간 있을 때 외할머니 뵙고 도와드리게 외할머니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외할머니 집 앞에 도착하니 엄마는 유모차에 빈 상자를 싣고 계셨다. 외할머니가 온종일 돌아다니시면서 모아 오신 빈 상자를 엄마가 대신 정리하는 중이었다.

상자가 가득 실려 밧줄에 꽁꽁 묶인 유모차를 엄마는 살짝 밀어보더니 혼자 갈 수 있다면서 나에게는 외할머니 집에 들어가 외할머니 말벗을 하고 있으란다. 그럴까 하다가 엄마가 밀고 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도와주겠다면서 유모차 모퉁이에 서서 따라갔다. 그런데 엄마가 내 생각을 알았던지 외할머니 생각하면서 혼자 밀고 가보란다.

외할머니 사시는 곳은 대구인데도 시골처럼 오솔길이 많았다. 짐이 가득 실린 유모차 밀기가 만만치 않았다. 오솔길을 따라 한참 걸었을까 고물상회가 보였다.

빈 상자를 저울에 올렸더니 저울이 쑥 내려가서 2만원 정도는 받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고작 4천50원이었다. 힘이 쫙 빠졌다. 외할머니 생각을 하라고 해서 힘들어도 힘들단 말 안 하고 중심 잡고 밀고 왔는데.

외할머닌 이렇게 돈을 모아서 외손자 좋아한다고 통닭을 사줬는가보다. 돌아오는 길 엄마는 유모차에 타라고 했다. 오솔길을 지나 살짝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밀기 힘들다면서 체중을 10㎏만 빼고 앉아 있으란다. 우리 엄마는 잔소리도 엄청나게 심하지만 가끔 잘 웃긴다.

외할머니께 상자 값을 전해 드리고 엄마는 또 외할머니에게 잔소리했다. 빈 상자, 병 줍지 말고 건강을 위해 운동만 꾸준히 하라고.

외할머니와 저녁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난 열심히 사시는 외할머니를 생각하며 결심했다.

외할머니께서 시켜준 통닭, 저 앞으로 안 먹을 겁니다. 그러니 힘들게 상자 모으지 마세요. 사랑하는 외할머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양성규(대구시 북구 복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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