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립잡지를 읽다가, 이 말에 눈길이 멈춘다. 식사는 하셨느냐고 물으며, 아직 식사 전이라고 밝히는 화자는 잡지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며 이 잡지를 배포하는 어느 카페의 주인장이다. 그는 시인이다. 당시 나는 실제로 몹시 배가 고팠기 때문에 그 말이 쏙 들어왔을지 모른다. 더군다나 이 말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밤마다 안주, 날마다 해장'이라는 요리 코너 표제에 이르러, 춥고 배고픈 나로서는 가난한 마른 침만 꿀꺽대며 간절히 바라볼 수밖에. 그렇다고 그 말에 머물게 된 것이 나의 시장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 있을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주인장의 환대가 발음 너머에서 울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철요리'가 아니라 '제때요리'라 할 만한 요리 코너 표제를 보고, 주인장이 '온기와 웃음'을 대접하려는 것이라고 과감히 단정 지었다.
보통 우리는 아무리 배고파도 적대적으로 느끼거나 위험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식사했느냐고 묻지 않는다. 또한 부담스러운 관계와는 절대로 식사 약속을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자신의 민생고 문제까지 밝히는 일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화해하고 싶을 때도 우리는 통상 먹는 일로 화해의 통로를 만들기도 한다. 아니면 가지고 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저는 아직입니다'를 따라 읽으면 발음 너머의 울림에 누군가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는 듯하다. 발음해 보시라. '탁월한 방식으로' 우리를 사로잡는 주인장의 환대는 자신의 작업장에 화가들을 초청해서 소박한 초대전을 열기도 한다.
어느 날 이렇게 독립잡지를 마주하면서 번진 웃음은 무엇인가 모를 내 안의 부채감을 덜어주면서 나를 가볍게 해주었다. 단지 마음에 드는 문장과 재치 있는 표제를 접했을 뿐인데도, 뭔가가 해소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근자에 여러 가지 형태의 독립잡지가 눈에 띈다. 다루는 방식이나 주제, 전달 매체 등은 다양하며 꼭 '잡지'라는 명칭이 필요한가 싶은 것도 있다. 필진들의 구성도 이채롭다.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릴레이 판타지 소설 쓰기와 비슷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인쇄를 거치기 때문에 활자와의 보이지 않는 투쟁이 묻어 있다는 것 또한 재미난 특징이다. 물론 명칭이 시사해 주는 것처럼, 이런 활동은 젊은 열정의 소산물들이다. 이 열정의 기저에 놓인 공통점은 대체로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거짓이 없으며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충실하고 때로 공격적이기도 하다.
이들의 공격성은 상해나 위협과는 당연히 다르다. 과감하고 대담하게 해주는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자신감의 한 표현일 뿐 뻔뻔함이나 위협, 상해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렇기에 아주 소소하고 미미한 것처럼 보이지만, 흡인력이 강하고, 자신들이 신나고 즐거워하기 때문에 들뜨지만 진지하다. 그렇기에 이를 중심으로 독특한 연대와 공통체가 형성된다. 외국의 어느 큐레이터는 이러한 소규모 연대와 공동체의 성공적 운영이야말로 현대 문화의 대안이 아닌가 진단한 바도 있다. 심각한 시장기 속에서도 상큼하게 전해지는 화자의 환대와 온기, 웃음과 부채 탕감이라는 선물은 그 열정의 한 자락이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개성이 넘치는 문화 공간에서, 개성이 넘치는 표현 매체를 생산하는 일은 하나하나가 표현 욕구의 실현이자 소규모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며 공통의 담론을 생산하는 중요한 행위라 할 만하다. 물론, 자본과 상술의 전략 속에서 멋지게 포장되어 짐짓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거짓이 없는 척'하는 유사품들도 널리고 널려 있다. 이러한 유사품들은 표현에 충실하기보다는 판매에 충실하고, 조장된 유통망 속에 개인의 시선을 가두고 만다. 여기에서 각자 표현 욕구는 부지불식간에 파묻혀 평준화되고 만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둘을 분별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객관적인 지표가 없다거나 전문적 식견이 필요하기 때문이 절대로 아니다. 개성을 판매하는 자본의 포장술은 신기에 가깝게 뛰어나며 유혹적인 데 비해 우리 모두는 타자의 욕망에, 그 매혹에 사실상 무방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산적 문화 행위가 지속되도록 부지런히 채비할 수밖에. 상념의 자락에 시장기는 깊어지고, '식사하셨습니까? 저는 아직입니다'.
남인숙/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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