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크게, 많이… 反생명적 농업의 역습 『아름다운 후퇴』

입력 2012-09-22 07:03:23

자연계 순환서 '궤도이탈' 인간·생태계 피해 부메랑

공부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해지고, 생각만 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위험다고 한다. 농부 역시 대량 생산에만 골몰하고, 왜 대량생산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맹목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이 책 '아름다운 후퇴'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농업과 축산업, 식생활을 통해 살펴보는, 이른바 '농업 철학서'라고 할 수 있겠다.

◆비정상적 음식들

'젖소는 새끼를 낳고 나면 약 305일간 우유를 생산한다. 아무리 젖소라도 새끼를 낳아야 젖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농장에서 기르는 개량 젖소는 늘 젖이 나온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음식이 우유다. 그걸 우리가 먹는다. 세상의 어떤 동물도 다 자란 뒤에까지 젖을 먹는 동물은 없다. 젖은 어릴 때 먹는 것이다. 또한 자기를 낳은 어미의 젖을 먹어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건강을 위해 먹는 '우유'를 비정상적인 음식으로 규정한다. 젖소 사육자나 우유가공업체가 들으면 기가 찰 일이겠지만, 이 책의 목적은 우유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유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자연 상태에서 닭은 5, 6개월 정도 자라야 삼계탕이 될 만큼 성장하는데, 요즘 양계장에서 키우는 닭은 부화한 지 27일 만에 삼계탕용으로 출하한다. 돼지는 150일 만에 90㎏에 달하는 데, 이는 옛날 집돼지에 비해 3, 4배 짧은 기간이다. 자연 상태에서 소의 평균수명은 15~20년인데, 축산농가에서는 사육비 대비 가격 경쟁력이 좋은 30개월 안팎에 내다판다. 동물은 생명이 아니라 인간의 음식이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가축을 키우되 축산을 금지하고, 육식을 끊어야 왜곡된 동물의 삶과 사람의 삶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입을 위한 잔혹 행위

농민들은 상당한 판매고를 올려도 실수입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쉰다. 이 책은 그 이유를 '농사를 농부가 아니라 기계와 석유, 농약이 짓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농업은 이미 공업에 가까워졌으며, 축사에서 기르는 가축은 공장에서 만드는 제품에 가깝다는 것이다. 따라서 농민이 수천만원의 판매고를 올려도 농약값, 사료값, 기계값, 시설비 등을 빼면 결국 껍데기뿐이라는 것이다.

도시인은 입맛의 쾌락을 좇아 닭 가슴살, 돼지 항정살, 가브리살 등 특정 부위를 골라 먹고, 학계와 농업계에서는 그런 부위가 잘 발달된 종을 만들어내려고 밤낮없이 연구하고 노력한다. 상황이 이러니 종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전염병이 돌았다 하면 전국이 난리다. 이 모두 우리의 생산과 소비가 자연스러운 순환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궤도 이탈은 결국 인간, 동물, 식물, 지구 모두에게 피해로 돌아온다. 지은이는 입의 호사를 넘어 동물과 식물, 인간과 자연이 모두 평화롭고 넉넉해지기 위해 생활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채식하기, 귀농하기, 더울 때는 땀 흘리고 추울 때는 떨며 살기, 포용하고 사랑하기, 어떤 조건에서도 늘 평화롭기.' 지은이는 "이런 것들이 이 시대의 최고 진보" 라며 "비판과 저항, 상대를 이기기 위한 투쟁은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한시적인 수단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남을 비판하는 촛불

우리나라에서는 촛불집회가 자주 열린다. 지은이는 이 같은 촛불집회가 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우리가 진짜 들어야 할 촛불을 '저항을 넘어선 창조의 길', 즉 이명박 정부 혹은 타인을 향한 요구와 주장을 넘어 나 자신을 향한 요구와 주장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농민과 지자체는 미국산 미친 소를 기회로 한우 판촉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반생명적 농사를 중단하고 생명의 농사를 짓겠다는 촛불을 들어야 하며, 노동자는 파업이 아니라 면장갑을 한 번 쓰고 버릴 게 아니라 빨아서 다시 쓰겠다는 결의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기타 모임에서 우리가 진짜 가야 할 길을 밝히고, 촛불로 결의를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남과 주변을 향한 요구와 저항은 마치 평화와 행복이 환경과 상대편의 행동 여부에 달려 있다는 식의 오해를 갖게 한다'며 '이상 기후, 이상 질병, 이상 사회에서 벗어나 평화와 행복에 도착하려면 욕망에서 한걸음 물러나 기꺼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387쪽, 1만6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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