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도 감탄"…맛이 스토리를 입다
매일신문 '맛 시리즈-향토음식산업화' 특별취재팀은 그동안 독자들의 성원 속에서 대구경북지역 향토음식 50선과 경북 전통주 11선을 연재한 데 이어 이번에 다시 음식 산업화에 성공한 전국의 맛집을 찾아나섰다.
국내 각 지역의 향토음식이 관광 상품화에 성공한 배경을 비교, 분석해 보면서 대구경북 음식이 산업화를 위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향토음식 산업화에 길잡이가 될 성공 모델을 10여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엑스포가 끝나면서 여수는 다시 조용하고 아름다운 항구도시 옛 모습으로 돌아왔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염천도 어느새 초가을 정겨운 햇살로 바뀌었다. 이순신 장군 광장도, 여수 항구도 이제야 좀 여유로워진 것 같다. 얼마나 맛이 있으면 '샛서방 고기'라고 할까. 말만 들어 봤지 한번도 먹어 보지 못한 여수 금풍생이 구이를 찾아 가는 길은 어느새 살랑살랑 상큼한 바닷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유명인사들도 앞다퉈 찾는 여수 구백식당
여수에서 가장 유명한 생선 음식점 거리는 이순신 장군 광장이다. 원래 다닥다닥 식당들이 생긴 대로 들어서 있었으나 엑스포 준비로 다 정비되고 철거돼 광장 한쪽으로 이전됐다. 말끔하게 단장된 음식점 거리에서 말로만 듣던 금풍생이 구이집이 눈에 들어오자 맛을 보려는 맘이 급해졌다. 어느 집으로 갈까 망설이다 여객선 터미널 정문 앞 구백식당(여수시 교동 678-15)을 찾았다.
"여그서 앉아 있으면 금풍생이 맛나게 구워 드려불 거니 쪼깨 기다리소 잉."
호남 특유의 사투리로 자리를 안내한 아줌마의 위풍당당한 기세부터 이 집 금풍생이 맛을 짐짓 기대하게 만들었다. 식당 벽면에는 온통 유명인사들이 다녀간 흔적이 걸려 있다. 탤런트 강부자를 비롯해 오정혜, 배일집, 백일섭 등을 시작으로,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도 눈에 띈다. 포항서 멀리도 찾아왔구나. 이해찬 전 국무총리, 정대철'한화갑'나경원 전 국회의원 등 내로라 하는 정치인들도 다녀갔다. 일본 후지TV도 다녀갔다. 점심때가 한참 남은 오전 11시인데도 미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손님들이 꽤 많다.
주인 손춘심(65) 씨는 "지금까지 장사하면서 수입고추 반 근도 안 써 봤지라잉. 우리 집은 반찬 재사용 하는 거 절대 없소"라고 한다.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들 입소문이 무서워서도 못한다고 했다. 종갓집 맏며느리 같은 손 씨는 떳떳하게 장사하는 모습 덕분에 전국뿐만 아니라 일본인 단골도 생겼다.
◆"금풍생이는 내장 맛으로 먹는 거여"
온통 사진으로 뒤덮인 벽면에서 한참 후에야 메뉴판을 찾았다. 서대 회 1만원, 아구찜 1만3천원, 아구탕 1만원, 아구 내장탕 1만2천원, 아구 대창찜 2만3천원, 거문도산 갈치구이 1만원, 금풍생이 구이 1만3천원. 한참을 기다려 구이가 나왔다.
"워매 맛있는거…. 요거 뼈가 많아서 천천히 드셔야 한당께요. 자 어서 맛나게 드셔부소."
입술이 도톰하고 눈에 쌍꺼풀이 끼인 게 첫눈에도 참 예쁘게 생긴 생선이란 느낌이다. 먼저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가 미각을 자극한다. 꼬리 부분을 조금 떼어서 간장에 찍어 한입 넣었다. 고소한 냄새가 맛으로 바뀌어 입안을 채운다.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그냥 칼집을 넣고 소금만 발라 구웠을 뿐인데도 맛이 난다. 워낙 육질이 단단해 구워놔도 모양이 그대로다. 등쪽 지느러미를 잡아떼면 마치 얼레빗을 들고 있는 모양인데 횟감처럼 등지느러미에 붙어 있는 살이 가장 고소하단다. 고소한 냄새는 대단하지만 가시가 억세고 입에 들어가는 것이 별로 없다. 너무 기대한 탓일까? 반 마리를 먹고 나서는 약간 실망감이 들었다. 뭘 보고 그렇게 맛있는 고기라고 난리였는지 한편 의아스럽다는 생각이 들 즈음, 그런 표정을 읽었는지 곁에 있던 식당주인이 쳐다보며 빙그레 웃는다.
"금풍생이는 내장 맛으로 먹는 거여." 내장 쪽을 떼어 양념간장에 찍어 건네준다. 한입 베 물었다. 구수한 내장과 파를 송송 썰어 넣은 왜간장 맛이 어우러져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래 이 맛이야! 몇 점 안 되는 살점에 실망이었지만 드디어 제맛을 찾았다. 꾸덕꾸덕 말린 금풍생이 내장은 마치 굴비의 내장처럼 숙성돼 구수하게 맛 들어 있었다. 으흠 이맛이…! 금풍생이의 참맛을 알게 된 일행은 그제야 깔짝거리던 젓가락질을 그만두고 각자 두 손으로 가시를 발라내고 살점을 입안으로 가져가느라 곁을 돌아볼 새 없이 바빠졌다. 너무 고소해 깨돔이라고도 부른단다. 아하! 이래서 금풍생이가 이순신 장군의 애인 이름이라는 소문이 났는가.
◆기막힌 금풍생이 스토리텔링 마케팅
금풍생이는 샛서방 고기라고도 불린다. 석쇠로 구운 생선이 하도 맛있어서 남편에게는 주지 않고 숨겨둔 애인인 샛서방한테만 준다는 뜻이다. 여수 사람들이 호남 특유의 익살을 붙여서 만든 기막힌 스토리텔링이 아닐 수 없다. 여수 사람들만이 알던 이 얘기는 1991년 가수 송대관 씨가 한 방송사의 리포터로 참여해 여수를 찾아오면서 전국에 알려졌다. 송대관 씨가 당시 금풍생이가 숨겨 둔 애인에게만 몰래 주는 생선이라고 익살스럽게 소개하면서 이를 계기로 전국 식도락가들이 여수로 몰려와 대박이 터져버렸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원래 금풍생이는 '군평선이'였다고 한다. 군은 수군(水軍)을 뜻하고, 평선이는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을 맘대로 드나들던 관기의 이름. 당시 평선이는 소문이 날 정도로 예쁜데다 슬기롭기까지 해 이순신 장군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는 것. 앙증맞은 생김새에다 등지느러미 가시가 부챗살처럼 예쁜 금풍생이의 노란색 꼬리 지느러미는 기생 평선이의 모습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 평선이처럼 예쁘고 맛나는 생선이라 해서 이름을 '군평선이'라고 지어졌다는 얘기다. 그 군평선이가 군풍생이-금풍생이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에 얽힌 이야기는 또 있다. 장군이 여수 장터에 나왔다가 평선댁이라는 주막에서 점심을 먹는데 생선구이가 하도 맛이 있어 무슨 생선인지 이름을 물었더니 아무도 아는 이가 없어 앞으로 생선 이름을 그 집 주인의 이름인 평선이라 부르라 하여 구운 평선이 즉 군평선이가 어원이 됐다는 이야기다.
스토리텔링 효과를 따져보면 입소문 전파력은 '샛서방고기'라는 이름이 가장 세다. 특히 요즘 같은 성 개방시대에 열풍처럼 번져 갈 휘발성이 내재돼 있는 소재다. 이순신 장군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에게 애첩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아무리 장사라고 하더라도 어느 안전이라고'라며 비판할 수도 있으나, 스토리텔링은 점잖은 이야기보다 오히려 그럴듯하게 꾸민 황당한 이야기가 더욱 파괴력을 발휘한다.
최재수기자 biochoi@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강병서기자 kbs@msnet.co.kr
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사진작가 차종학 cym47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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