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의 즐거움은 오랫동안 남성성의 대표적인 표징이었다. 남성들에게 보편적으로 내재된 성적 특성인 '관음증'이라는 명분으로 길가는 여성의 신체 부위를 훑어보며 즐거워하거나 드라마나 영화 속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며 등장하는 여배우들을 에로틱한 시선으로 감상해왔다. 대학 시절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남학생이 많은 경상대 앞이나 법과대 앞은 어김없이 보는 것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남학생들의 시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근대 서양회화의 누드화에서도 여성은 오브제로서 보여지는 광경이 되고 화가인 남성은 감상자가 된다. 예술 작품에 있어서도 이렇듯 본다는 것의 즐거움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고, 남성들의 본다는 것에 대해 페미니즘 정신분석학자이자 영화이론가인 로라 멀비는 응시(gaze)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응시에는 여성을 남성 시선의 수동적 대상으로 만드는 남성 중심의 권력이라는 정치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 "보여줘 보여줘~" 아줌마 부대들의 함성과 함께 멋쩍은 표정의 20대 초반의 남자 아이돌 스타가 못 이기는 척하고 상의를 걷어 올려 잘 관리된 식스 팩을 살짝 드러낸다. 그리고 연이은 "꺄악 꺄악" 탄성 소리, 최근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에서는 잘 가꾸어진 젊은 남자의 몸에 열광하는 아줌마 부대의 탄성과 즐거움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 한 여자가 침대 위에서 트램펄린을 하듯 높이 뛰며 건너편에 있는 뭔가를 보려고 애쓰는 장면이 나온다. 연이은 화면에 등장한 그 뭔가는 다름 아닌 샤워를 마치고 멋진 몸매를 드러낸 건너편 아파트의 남자다. 샤워 타월이 벗겨지려는 찰나 건너편 아파트의 여자들이 침대 위에서 일제히 동공을 확장한 채 트램펄린에 열중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 시각 그녀들의 남편은 침대 위에서 자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침대'라는 광고 카피로 유명한 모 침대 브랜드의 CF 장면이다.
이제는 보는 즐거움이 남성들만의 것이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내재된 욕망이며, 즐거움의 기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변화된 여성성과 남성성은 본능이라고 믿었던 욕망까지도 변화시킨다. 보는 대상도 화화 그림이나 작품 못지않게 사람의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몸'이 주목을 받게 된다. 몸 이미지가 부각되고 있는 현상 즉 쾌락과, 욕망, 차이, 놀이를 강조하는 현대 소비주의의 특성은 후기 산업주의, 후기 모더니즘 같은 수많은 일련의 과정들이 초래한 문화적 환경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몸은 잘 가꿔지고 다듬어진 아름다운 몸이 된다.
여성들은 세련되고 섹시한 이미지를 위해 뼈를 깎는 아픔을 딛고 새로운 몸으로 태어난다. 남성들도 보여주기 위해 닭 가슴살을 질리도록 먹으며 거친 남성성이 아닌 가지런히 다듬어진 예쁜 근육 몸매 만들기에 열중한다. 외모만으로는 더 이상 사회적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되었으며,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동안 외모는 연하남과의 로맨스를 꿈꾸게도 한다.
길거리마다 세련되고 섹시한 남녀들이 넘쳐나 보는 눈을 즐겁게 한다. 이제는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구분을 더 이상 남녀 간의 권력의 문제로만 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보는 즐거움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즐거움도 늘어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 문화 속에는 '본다는 것'의 즐거움은 남성들의 것이라는 생각이 오래된 관습처럼 남아있으며, 외모와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상관관계에 있어서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커지고 여존남비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남성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다. 광고 속의 CF 장면이나 드라마에서의 연하남과의 로맨스가 더 이상 가상현실에서의 대리만족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현실이 되었으면 한다. 배 나온 옆집 아저씨도, 공부만 하는 앞집 총각도 모두 모두 혹독한 다이어트와 운동을 통해 초콜릿 복근의 근육남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동안 누려보지 못했던 여성들의 '본다는 것'의 즐거움을 위하여~.
이현주/대구보건대학교수·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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