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차떼기당' 오명 입혔으니 제손으로 결자해지해야죠"
"'정치 쇄신'이라는 말, 그 말에 (마음이) 갔다고 할 수 있다. 쇄신하자는 (박근혜 후보의)말에, 또 제가 제일 적임자라는 취지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불법대선자금 수사로) 차떼기당 소리를 듣고 어찌됐든간에 천막당사로 가고 연수원을 헌납하는 등 쇄신의지를 보였지만, 당시의 그런 것들을 연결시키면 건방진 말인지도 모르지만 결자해지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5년 뒤 측근비리가 되풀이 된다면 새누리당도, 나라도 희망이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쇄신이라는)그런 대의라면 약간의 비난과 개인적 희생도 의미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29일 새누리당 대선캠프의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대선판에 '깜짝 등장'한 안대희(57) 전 대법관은 2003년 대검 중앙수사부장으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희정, 최도술 씨를 구속하고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에게 '차떼기당'이라는 오명(汚名)을 안겨준 장본인이다.
그후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난 그는 2006년 대법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임기를 마친 지 48일 만에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정치판에 입성했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에서는 그의 변신에 대해 엄청난 비난 공세를 퍼부었다. 참여정부 당시 민정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안 전 대법관을 잘 알고 있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경선 후보조차 "참여정부때 승승장구했는데 지금보니 의리가 없다"며 섭섭함을 표시할 정도였다.
노 전 대통령과 사시 동기(17회)인 그는 참여정부 시절 중수부장 등 검찰 고위직을 지내면서 참여정부 사람들과 친분이 두텁다. 문 후보 등 야권의 비난은 그런 그가 새누리당 후보진영으로 간 것에 대한 섭섭함일 것이다.
안 위원장은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이 진행 중이던 지난 7월과 8월 24일 두 차례 박 후보가 도와줄 것을 요청하자 결단을 내렸다. 그는 박 후보에게 설득당했다는 표현을 썼다. 그는 "꼭 (정치쇄신위원장을)맡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 정도"로 진정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경제 발전과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마다 친'인척 측근 비리 등으로 나라가 흔들리는 등 정치가 못따라오고 있는데 그런 기본적인 질서를 갖춘 나라를 위해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참여를 정치행보로 보기보다는 '쇄신'에 방점을 찍고 싶어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지 10여 일이 지난 그를 12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만났다.
-새누리당에 대해 부채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것보다는 정치가 너무 불신받고 있는 것 같다. 정치가 쇄신돼서 국민이 먼저 (국회의원의) 세비를 올려주자고 해야 되는데 거꾸로 세비를 올린 것에 대해 국민들의 질타를 받고 이런 것은 잘못된 것 아니냐. 정치가 신뢰받고 원래의 좋은 방향으로 나라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선 것이다."
-대법관을 마친 후 48일 만에 정치권으로 들어왔다.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은 무엇이었나.
"우선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게 해서 미안하고. 가기로 한 연구원에도 사정을 설명했지만 정치 성향에 따라 상당한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비난받고 좋을 사람은 없지 않느냐. 그 비판도 감수해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아픔이고 어려운 결정이었다. 세속적인 영예나 자리를 찾아 온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본인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말을 싫어한다. 보수는 지킬 가치도 없는 것을 지킨다는 기득권 고수로 오해하기 쉽고 진보는 종북이라는 말과 연결되면서 지나침까지 포용하는 뜻으로 실제 쓰이고 있다. 그것 보다는 나는 원칙과 개혁이라는 말을 쓴다. 대법원에서도 저는 검사출신으로서 사회적 질서를 중요시했다. 그러면서도 소외된 사람과 약자, 근로자, 기업인 등을 다 안고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판결도 그랬다. 보수와 진보하고는 관계없다. 정치성향을 그렇게 분류하는 것은 왜곡된 편 가르기가 될 수 있다. 박 후보도 보수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저와 생각이 같은 지는 모르지만 저는 차라리 우파, 우측이 더 맞다."
-안 위원장의 정치 입문은 이회창 전 선진당 총재의 행보를 떠올리게 한다는 정치적 시각이 있다.
"에이~ 경상도 말로 정말로 '택도 아니다'. 여러 번 말하지만 저는 자질도 부족하고 그런 생각이 하나도 없다. 저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어느 칼날에 죽으려고…(웃음) 그런 선출직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다. 임명직에 대해서도 비슷한 마음이다. 단정적으로 (그런 공직을) 절대로 안하겠다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서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으로 일하면 행보로 증명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맡은 정치쇄신 업무만 할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 다 보시게 될 것이다."
사실 안 위원장의 발탁은 '포스트 박근혜'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정치권의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관을 물러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정치판에 뛰어든 것은 안 위원장 스스로도 그런 정치적 셈법을 해보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명경지수'라는 표현으로 사심없이 정치쇄신에 나설 것이라고 답했다.
안 위원장에 대해서는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야권에서도 제의가 있었다는 소문이 있다. 야권도 탐낼 만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야권의 비판에 대해 그는 "대법관을 그만둔 사람에게 지금 무엇을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논거가 없는 비판으로 생각한다"며 "대법관을 지낸 후 특정인을 대변하는 변호사를 하는 것도 그런 시각에서는 더 비판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대검중수부장 시절의 수사에 대해 물었다.
-중수부장으로서 굵직굵직한 수사를 지휘한 후 "칼에 피를 많이 묻혔다. 부처님께 빌어야겠다"고 한 적이 있다.
"모든 화이트칼라 범죄는 관행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 불법이지만 용인되었던 부분이 법의 심판을 받는 부분이 상당수였다. 그런 것을 처벌하면서 마음 아픈 일들이 많았다. 사회 지도층이 많았고 또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의명분에 의해 수사하면서 마음이 아픈 바가 있었다. 그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나는 깨끗하고 너는 더럽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검찰이 집권 초기에는 정권의 눈치를 보다가 임기말에는 측근 비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치 검찰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제가 수사할 때는 분명히 그러지 않았다. 저희들 나름대로는 검찰의 위기 상황에서 검찰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검찰총장과 저의 뜻이 있었다. 불편부당하게 했다. 자칫하면 검찰이 죽고 수사결과를 믿지 않을 것이란 위기감도 있었다.
다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선 제보가 잘 없다. 수사기관이 파헤치려고 해도 잘 없다. 생태적으로 정권이 바뀌면 전 정권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신 정권에 호소하고 폭로하는 일이 많다. 자연히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수사의 속성이 있다. 검찰이 100% 불편부당하다고는 하기 어렵다. 좌파적 가치에서는 검찰도 개혁대상이라고 하고 있는 것 아니냐."
-정치쇄신특위위원장으로서 생각하는 정치쇄신의 요체는 무엇인가.
"정치 부분의 투명화. 지역주의와 연고주의, 인사 문제의 객관성. 측근의 권력 행사, 국정 농단 그런 말이 나오지 않고 정상화되는 것 아니겠느냐. 시스템이 잡혀 있어야 한다."
-특위의 쇄신 방안을 어떻게 입법화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입법이든 뭐든 시기가 있다. 정부 초 인수위에서 추진해야 동력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저는 박 후보는 약속을 지킨다고 믿고 있다. 제가 만난 박 후보는 그런 의지가 있다. 야당도 (정치쇄신에 대해) 반대할 명분은 없을 것이다. 국회입법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특위위원장에 취임한 직후 곧바로 박후보 가족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조사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와 함께 일한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을 정치쇄신특위에 데리고 온 것도 주목받고 있다.
"남 전 지검장은 사실 제가 삼고초려해서 모시고 왔다. 박 후보의 친'인척의 비리까지 조사하겠다고는 했지만 수사권이 있는 것이 아니니 사실관계 등 이것저것 살펴볼 작정이다. 다만 우리 활동 자체가 박 후보가 친'인척 비리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는 점에서 예방효과도 크다고 본다."
-특위의 쇄신방안에 대해 박 후보와 사전 교감을 하는가.
"특위에 현역의원인 박민식 의원과 정옥임 전 의원 등이 있다. 박 후보와 직접적으로 쇄신방안을 얘기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교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박 후보의 입장이 논란을 빚고 있다.
"예전에는 경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열악했다. 권력남용으로 평가되는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야가 합의해서 구성된 진실화해과거사위원회 등이 인혁당 사건 등을 모두 조사해서 조금이라도 억울한 부분은 재심을 권고해서 무죄선고가 났다.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명예회복을 하고 보상할 것은 하고 입장이 정리된 것으로 본다. 박 후보의 말씀도 그런 것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아버지때의 일이니까 인식은 하고 있는 것 같다. 대선은 미래를 향한 선거인데 역사적 평가를 정쟁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정리'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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