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1-때문으로 살다
죽는다는 건 참 쉬운 일이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정말 죽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가까운 고층 빌딩 옥상에 올라가라. 거기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다. 이만큼 생과 사의 갈림길은 가소로울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왜 죽지 못하고 이 지지리도 궁상맞은 세상에 빌붙어 사는가? 아버지가 당신 혼자 종합 검진을 받으러 가셨다. 딱히 어디가 불편해서 병원을 찾은 건 아니다. 그저 올해 들어 당신 스스로 몸이 수상쩍어 가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나는 눈이라고 펑펑 왔으면 싶다.
죽음은 나와 가까운 벗이다.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삶은 녹록지 않은 무게감으로 여름날 시냇물에 발 담그는 어린아이처럼 나의 어깨에 앉아 있다. 유난히 어깨 눌림이 심한 날이면 난 죽음을 생각한다. 다행히 딸린 식솔이 없다. 마음 놓이는 일이다.
지금쯤 아버지는 분명하지 않은 의식의 상태로 꿈결을 헤매고 있을 터이다. 소복소복 눈아, 쌓여라.
삶은 왜 이리도 길고 긴가. 하루살이가 부럽다. 아니다. 인간의 눈에나 24시간이라는 하루가 짧을 뿐 끝을 모르는 하루살이에게 하루란 억겁의 시간일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막 끝내고 식당이다. 끊어라. 밥 나온다." 수화기 저편의 아버지 음식이 허기진다.
죽는다는 건 참 쉬운 일이다. 다만,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집착 따위를 놓기 어려울 뿐이다. 사랑도 가족도 그 무엇의 '때문에도' 죽음에 대한, 살고 싶은 마음에 대한 변명이다. 아직 나에겐 '~ 때문에'라는 변명거리가 있다. 하여서 난 산다. 끝내 산다는 것은 나 때문이었던 것이다.
서혜정(대구 중구 대신동)
♥걷는 즐거움
오랫동안 양반 다리로 수행에만 전진했더니 영적으로는 건강해졌지만 다리가 망가져 버렸다. 마음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한 가지에만 집착한 나의 무지의 결과였다. 이렇게 불구가 되어 버리면 어떻게 할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두려움이 앞서 눈물까지 핑 돌았다.
어머니께서 "야야, TV에 나오는 박사님들께서 걷는 것이 그렇게 좋단다. 너도 한 번 걸어 봐라". 어머니의 말씀이 내 머리에 꽂혔다.
걷기로 단단히 결심했지만 학교 운동장까지 걸어 나올 수가 없었다. 정문 앞까지 왔다가 되돌아가기를 수십 번. 한 달 만에 운동장을 한 바퀴 걸을 수 있었다. 산을 정복한 느낌이었다. 팔, 다리에 힘이 없어서 겨우 한 발자국씩 힘겹게 내디뎌야만 했다. 불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걸었다. 한 달 정도 걸었다. 자꾸 걷다 보니까 자세도 교정되는 기분이었다. 어깨를 펴고 척추를 똑바로 세워 발바닥에 힘을 주어 11자로 당당하게 걸었다. 샘물이 땅속에서 분출하듯이 인체에 있는 생명의 기가 샘처럼 솟아오르는 듯했다.
이제 나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았고 나의 삶을 돌아보며 사랑하게 되었다. 걷기는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 같다. 쓰지 않으면 녹스는 것이 기계만이 아니다.
마음이 아플 때, 사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앞이 캄캄해서 인생의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무작정 걸어 보자. '잘 살고 싶으면 잘 걸어라'라고 말하고 싶다.
장명희(대구 달서구 이곡동)
♥시1-동강 래프팅
불타는 정열로도 모자라는 한여름의 대지
창공을 향한 아름다운 균열, 영월 동강 어라연
천년의 사연으로 풀어내는
비췻빛 맑은 물결은
내 마음을 감돌고 또 감돌고
천년을 하루로 오로지
건널 궁리에 빠져 허우적대는
기묘한 직벽 봉우리들은
안타까운 허리를 틀어 옥빛으로 물들이고
영원으로 일어나 영원을 향해 가는 유려한 물줄기의
짙푸른 가슴에
현재 이순간의 한 점으로 살포시 안긴
빠알간 고무보트를 저으며
맴돌다 흐르다 여울에 걸려 뺑뺑이를 돌다 마친
나보다 몇 갑절은 간 큰 아내와 함께한
그날의 물길여행은 지금도 눈에 선한데
장난끼로만 사는 가이드 땜에, 아니
무릉도원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의 권주가에 끌려
이태백도 침 꼴깍 삼켰을 푸른 강물 한 모금을
온몸으로 왈카닥 삼켜
숨 막혀 죽을 뻔 했던 순간은
까마득히 잊을 뻔 했네
여환탁(영천시 교촌동)
♥시2-소매물도 몽돌
아득히 먼 옛날
네모를 품은 바다는
하늘과 한 몸 되어
억겁의 사랑으로 몽돌을 만들었다
하늘빛 바닷물
모세의 기적 하루에 두 번 일어나
등대섬 가는 돌길 내어주고
좌우로 갈라져
몽돌밭 공기놀이 즐긴다
파도 장단에 맞추어
예쁜 돌 어루만지다가
하얀 웃음 남긴 채 돌아가려는데
몽돌이 자잘 자잘 보챈다
홍봉식(김천시 부곡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허이주(대구 달서구 성지로) 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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