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작품 목록…극단의 전통'실력 판단하는 잣대 중 하나
'레퍼토리'는 극단이나 배우 등이 공연하기로 결정한 작품의 목록을 의미한다. 물론 연극에서만 국한되어 사용되는 말은 아니다. 이 말은 음악이나 무용 등 다양한 공연예술에서 통용되는 말로 심지어 개인의 노래방 레퍼토리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연극학 사전'(현대미학사)에서 레퍼토리의 정확한 의미를 찾아보면 '어느 한 계절, 혹은 특정한 기간 동안에 한 극장에서 상연된 극작품들의 총체''동일한 스타일 혹은 동일한 시대에 속하는 작품들의 총체''한 사람의 배우가 해석해 낼 수 있는 역할들의 총체, 혹은 그가 할 수 있는 연기의 여러 가능성들,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의 범위'라고 나와 있다. 어떻게 보면 꽤 어려운 말로 들리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어쨌든 단순하게 생각하면 공연 작품의 목록인 셈이다.
연극계와 음악계에서 주로 많이 사용하는 이 말은 아예 해당 단체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OO레퍼토리' 등 극단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연극을 업으로 삼는 극단의 입장에서는 레퍼토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퍼토리가 있느냐 없느냐, 얼마나 많은 양질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은 해당 극단의 실력과 위상을 보여주는 객관적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극의 역사가 깊은 나라, 전통이 있는 극단일수록 레퍼토리 작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극단의 레퍼토리 작품은 일반적으로 작품성을 보증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공연되는 작품이니 만큼 충분히 검증을 받은 좋은 작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작품성보다는 관객의 말초적인 재미만 추구하는 상업성이 강한 작품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최근 들어 문제가 되는 경향이기도 하다. 이런 나쁜 사례가 아니라면 레퍼토리의 활성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고전 명작들을 레퍼토리로 가지고 있는 영국의 극단은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지 않더라도 최고의 문화상품을 생산하는 세계적 문화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반드시 새로운 작품, 창작초연이 좋은 것은 아니다. 창작초연 중에서 살아남은 작품이 고전이 되어 오랫동안 관객의 사랑을 받는다면 시대의 변화에도 그 작품을 버리지 않고 시대성을 반영해 계속해서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레퍼토리로 만드는 것은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관객 입장에서도 극단의 레퍼토리 보유 유무는 관람할 공연을 선택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할 만한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해당 극단의 전통과 실력 등을 가늠하는 훌륭한 가늠자이기 때문이다. 믿을 만한 극단의 믿을 만한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관객 자신이 투자한 시간과 돈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에 하나이다. 물론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신생 극단을 무시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실험성과 신선함 등을 무기로 관객을 맞이하는 연극인의 열정은 관객에게 큰 감흥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 중에서 성공하여 살아남은 작품의 위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감흥을 주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작품이 바로 극단의 레퍼토리로 남게 된다.
항상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극단의 노력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것이 연극을 발전시키고 배우와 연출, 작가 등 연극인의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그것이 새로운 볼거리에 대한 관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항상 새로운 작품, 새로운 볼거리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레퍼토리로 삼을 만한 훌륭한 작품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신작을 공연할 수밖에 없는 극단도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기 극단만의 정체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작품성을 검증받은 공연을 레퍼토리로 만들고 그러한 레퍼토리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신작을 공연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극단으로 우뚝 서는 길일 것이다. 관객이 이러한 레퍼토리의 특성을 이해하고 공연장을 찾는다면 연극은 한층 더 발전할 것이다.
안희철 극작가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우원식 "최상목, 마은혁 즉시 임명하라…국회 권한 침해 이유 밝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