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이요, 천원" 아이들까지 현장 '경제놀이'
각양각색의 좌판과 판매대가 줄지어 늘어선 길을 따라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간다. 지나가다 마음 가는 물건이 있으면 주인 허락받을 것도 없이 그냥 집어 들고 요리조리 살핀다. 마땅치 않을 경우 언제라도 그냥 내려놓고 부담 없이 그 자리를 떠나면 된다. 벼룩시장이다.
"천원이요, 천원. 좋은 물건 있습니다. 빨리 와서 사세요."
이달 8일 오후 2시 대구 수성구 수성못 상단공원(두산동). 60여 개 텐트가 공원을 점령했다. 텐트에는 중고 책을 비롯해 학용품, 인형, 장난감, 액세서리, 핸드백, 옷, 선글라스 등 별의별 물건들이 가득했다. 가격은 1천원대가 주류를 이뤘고 1만원이 넘는 물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500원 하는 장난감도 눈에 띄었다.
수성시니어클럽이 마련한 이날 벼룩시장 부스의 주인공은 특별한 사람이 아닌 주부와 어린이, 여대생, 할아버지 등 평범한 이들이었다. 엄마 좌판 옆에 동화책과 학용품, 장난감 등을 펼쳐놓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 운동을 좋아해 그동안 입었던 트레이닝복 수십 벌을 가지고 나온 할아버지, 딸 자매가 많아 수십 개의 가방과 핸드백을 가지고 나온 아주머니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비싸게 산 청바지를 가지고 나온 여대생도 보이고, 장사에는 관심 없고 옆자리 아주머니와 수다를 떠는 주부도 눈에 띈다.
누나와 함께 나왔다는 정의한(13) 군은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을 예쁘게 진열해 놓고 손님을 기다고 있다. "두 달 전 처음 참여해 2만5천원을 벌어 5천원을 기부했다"면서 "내게 필요 없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버는 게 신기하고 내 힘으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정 군은 "이번에도 다 팔아서 기부도 하고 남은 돈은 가족을 위해 저녁식사를 살 계획이다"고 했다.
김수민(16) 군은 "오래되고 쓰다 만 물건을 팔아 용돈도 벌고 경제활동도 배우는 등 재미가 쏠쏠하다"면서도 "그러나 엄마는 '공부나 하라'며 이런 저를 반갑지 않아 한다"며 싱긋 웃었다.
송서연(23) 씨는 "몇 번 입지 않고 장롱 속에서 자리만 차지하던 청바지가 1만원에 팔렸다"며 "꼭 필요한 사람을 만나서 귀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사려는 사람들도 각인각색이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부터 엄마 손을 잡고 나온 아이들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물건 또한 평소에 볼 수 없던 신기한 것이 많고 저렴하다. 박수련(60·여) 씨는 "워낙 다양한 물건이 있어 가족 나들이 삼아 자주 찾는다"며 "선글라스를 2천원을 주고 샀다. 어디 가서 이 가격에 사겠냐"고 했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 얼굴의 공통점은 여유가 흘러넘친다는 것. 가지고 나온 물품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님과의 만남이 즐겁고, 사고파는 것에서 경제활동을 배우고 인생을 배운다. 그리고 중고품을 판 수익금을 챙겨서 좋고, 수익금 일부를 사회에 기부해 기분도 좋다.
그래서 이곳 상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없다. 모두 웃는 얼굴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가격이 내려가기도 하고 덤이 오가기도 한다. 돈이 이것밖에 없으니 무조건 달라는 사람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에누리를 요구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곳에선 모두 애교로 받아들인다.
수성시니어클럽 정석규 과장은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어 좋고, 아이들에게는 경제교육을, 그리고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어 참여자의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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