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피아노, 달성 사문나루 통해 들어왔다"

입력 2012-09-11 10:55:20

1900년 3월 부산 통해 낙동강 뱃길로…손태룡 음악문헌학회 대표 주장

한국음악문헌학회 손태룡 대표
한국음악문헌학회 손태룡 대표
짐꾼들이 무거운 피아노를 상여 메듯 옮기는 장면
짐꾼들이 무거운 피아노를 상여 메듯 옮기는 장면
사보담의 부인 에피가 그린 피아노 운반대.
사보담의 부인 에피가 그린 피아노 운반대.

한국 최초의 피아노가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 사문나루(사문진)를 통해 대구지역에 유입돼 실제 음악교육 및 종교활동에 사용된 것으로 밝혀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음악문헌학회 손태룡 대표는 11일 "미국 선교사인 사이드보텀(한국명 사보담) 부부가 지난 1900년 3월 26일 부산에서 낙동강을 타고 피아노를 옮겨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 선착장에 도착한 뒤 대구로 들여왔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피아노의 '효시'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지금까지 학계에서는 현재의 대구 동산의료원(제중원)을 세운 존슨 부부가 1901년 5월 화원의 사문진을 통해 들여온 피아노가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연구과정에서 사보담 부부의 피아노가 이보다 1년여 빨리 유입된 실질적 증거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손 대표는 '대구지역 최초의 피아노 유입과정 고찰'(사보담 및 에피의 피아노)이란 제목의 미발표 논문을 통해 사보담 부부의 피아노 유입과정을 상세히 밝히면서 "사보담 부부의 피아노는 단순히 대구를 뛰어넘어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물론 현장에서 다목적으로 활용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이 논문에는 선교사 사보담이 미국의 부모에게 보낸 편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1900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미국에서 가져온 피아노를 화원 사문진 선착장에 내려 대구 종로의 집까지 3일간에 걸쳐 옮기는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편지에 따르면 피아노를 옮기는 데 하루에 짐꾼 20~30명을 불렀고, 60센트를 요구하는 인부들을 물리치고 1인당 30~40센트씩의 운임비를 지불했다. 상여를 운반하는 것 처럼 나무막대기로 틀을 짜고 그 위에 피아노를 실은 뒤 밧줄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막상 피아노가 들어가야 할 방문이 비좁아 문틀을 파내고 피아노를 들여놓아야 했다. 옮기는 과정에서 피아노가 너무 흔들려 제자리에 온전하게 남은 건반이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빠진 건반은 대부분 재조립됐고, 조율 상태는 좋아 연주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했다.

이 같은 '피아노의 진실'은 선교사 사보담의 외손녀 사라 커티 그린필드 박사를 비롯한 자손들이 2009년 조부모인 사보담 부부의 유품을 부산박물관에 기증하는 과정에서 알려지게 됐다.

영국 태생인 사보담은 1899년부터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대구지부서 1년간 근무하고 부산지부로 옮겨 1907년까지 7년간 활동한 뒤 안식년을 맞아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미국으로 돌아간 그 이듬해 12월 3일 가솔린 폭발사고로 세상을 뜨면서 한국땅을 영영 밟지 못했다. 사보담은 미국으로 돌아갈 당시 이 피아노를 부산까지 옮긴 것으로 알려져 한국 최초의 피아노는 8년 동안 한국에 머물다 미국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한편 내년 개청 100년을 맞는 달성군은 다음 달 5, 6일 이틀 동안에 걸쳐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사문진 선착장 일원에서 임동창 등 99명의 피아니스트가 99대의 피아노를 동시에 연주하는 '달성군 100년 마중 99대 피아노 콘서트' 등 각종 행사를 갖는다.

달성'김성우기자 swkim@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