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40) 우승 청부사 김응용 감독 영입

입력 2012-09-10 09:57:57

13억 최고대우 '어제의 적장' 삼고초려

2000년 10월 30일 김응용 감독이 삼성 감독으로 취임하고 삼성 신필렬 사장과 삼성 유니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2000년 10월 30일 김응용 감독이 삼성 감독으로 취임하고 삼성 신필렬 사장과 삼성 유니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제공

내로라하는 선수를 데려왔고, 더그아웃까지 옮겨봤지만 삼성 라이온즈는 2000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삼성은 물러서지 않았다. 또 다른 카드를 뽑았다. 우승을 여러 차례 경험한 '우승 청부사'의 손을 빌리는 것이었다. 별짓(?)을 다 하고도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지 못했던 삼성에게 이 카드는 결국 효과를 냈다.

삼성은 분주히 김응용 해태 타이거즈 감독 영입에 나섰다. 그리고 2000년 10월 30일. 마침내 그와 손을 잡았다. 계약기간 5년에 계약금 3억원, 연봉 2억원. 삼성이 그에게 안긴 13억원의 뭉칫돈은 프로야구는 물론 축구와 농구 등 국내 3대 프로스포츠 감독 중 당연히 최고액이었다.

1983년 해태의 제2대 감독으로 취임해 18년 동안 개성 강한 '호랑이 군단'을 이끌며 통산 9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그에게 돈은 그다지 문제 될 게 없었다. '삼성 타이거즈가 됐다'는 팬들의 맹비난에 귀를 닫을 만큼 삼성은 우승이 절박했다. 삼성은 계약서에 사인을 받아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한 차례 우여곡절을 겪은 탓이었다.

1999년 시즌 후, 삼성은 은밀히 김응용 감독과 접촉했다. "우승의 한(恨)을 풀어 달라." 삼성은 그만큼 통사정했다. 프로야구계에선 원년 맴버인 삼성이 1985년 통합우승을 빼고는 단 한 차례도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한 게 '불가사의'한 일로 여겨졌다. 김 감독도 그런 삼성의 처지를 익히 알고 있었다.

삼성은 그에게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계약조건을 제시했다. 삼성과 김 감독간의 구두 상 합의는 끝이 났다.

삼성은 분주히 그의 영입 기자회견 준비에 돌입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고, 그룹 윗선에 보고도 끝냈다. 이제 세상에 알리는 일만 남았다. 그러나 계약서를 펼 찰나 김 감독은 돌연 "미안하다"는 말을 삼성에 건네며 이적을 백지화했다.

'불가사의'를 풀 키를 잃게 된 삼성은 당황했다. 계약 전이었고, 비밀리에 추진했던 일이라 뭐라 할 말도 없었다. 그의 마음이 그렇게 굳었으니, 삼성은 시쳇말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됐다.

삼성 행을 굳힌 김응용 감독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1983년 그를 발탁한 해태 박건배 구단주의 전화였다. 김응용 감독은 구단주와의 장시간에 걸친 만남 후 1999년 11월 "해태에 남겠다"는 뜻을 알렸다.

김 감독은 스스로 "솔직히 그만두고 다른 팀으로 가고 싶었다. 시즌 성적도 감독을 맡은 이후 가장 나빴고 이미 감독이 돼야 했을 후배들에게도 미안했다. 더구나 해태도 한 사람이 오랫동안 감독을 꿰차고 있어 새로운 사람이 와서 개혁을 해줘야 미래가 보인다고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는 "그러나 박 구단주의 간곡한 설득을 뿌리칠 수 없었다. 17년 동안 함께 나눠온 박 구단주와의 인간적 신뢰를 저버리고 다른 팀으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구단주와 약속한 해태의 10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위업을 꼭 달성하고 싶다는 것도 마음을 바꾼 이유 중 하나였다"고 덧붙였다.

당시 해태는 여러모로 어려운 처지였다. 국제금융(IMF) 위기 이후 모기업인 해태제과가 부도를 냈다가 법정관리체제에 들어감으로써 해태 타이거즈도 자금난에 시달려왔다. 해태는 선수들을 팔아 구단의 명줄을 겨우 유지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발탁한 구단주를 저버리고 떠난다는 데 사나이로서 많은 부담을 느꼈다.

삼성은 긴급히 김용희 수석코치를 감독에 앉혔다. 그러나 결과는 또다시 한국시리즈 진출 실패였다. 김응용 감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삼성은 끈질긴 물밑작업을 벌였고, 마침내 그로부터 확답을 받아냈다.

김응용 감독은 2000년 드림팀 사령탑으로 올림픽 사상 첫 동메달을 따낸 뒤 "후배들을 위해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공개석상에서는 처음으로 용퇴의 뜻을 밝혔다. 김 감독은 2000년 10월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박건배 구단주를 면회했고, 정기주 사장과도 독대의 자리를 가졌다.

김용희 감독의 퇴진으로 감독 찾기에 나선 삼성은 김응용 감독 영입설에 그때까지도 "김응용 감독도 후보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 김 감독과 접촉한 적이 없다"며 사전 접촉설을 극구 부인했다. 한번 어긋났던 일이라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리고 얼마 뒤 해태는 사의를 표명한 김응용 감독의 뜻을 존중해 다른 구단으로 이적을 허용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은 팀의 우승 도전을 수없이 가로막은 장본인. 어제의 '적'을 감독 자리에 앉히면서까지 그토록 염원해왔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정조준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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