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 닫고 돌아앉은 여린가슴…'은둔형 외톨이' 그들은

꼭꼭 감춰둔 한마디 "날 좀 도와주세요"

3평 남짓한 쪽방에서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는 한 남성. 사진은 특정인과 관계 없이 한 은둔형 외톨이 남성의 실제 상황을 바탕으로 연출한 것이다.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배우 정려원 씨가 여성 은둔형 외톨이 역을 연기했다

기술 문명은 인간을 이롭게 하지만, 외롭게 할 때도 많다. 여기에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무한경쟁이 극성을 부리면서 세상은 더욱 각박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사회 속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은둔형 외톨이'이다.

은둔형 외톨이는 일본에서 '히키코모리'(ひきこもり)라는 이름으로 먼저 사회적 이슈가 됐다. 전문가 추산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는 은둔형 외톨이가 20만 명 이상이다. 과거 은둔형 외톨이는 청소년의 성격장애로 국한됐으나, 점차 성인으로 확대되면서 사회문제와 결부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외부와 현실과 담을 쌓은 채 살아가는 이들은 분노를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공격성을 가지고 있어 사회공동체를 위협할 잠재적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적게는 48시간(이틀)에서 많게는 168시간(일주일)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기도 한다. 이런 시간들이 길어지면 수년에서 십수 년 동안 집 밖을 나서는 횟수를 헤아릴 수 있을 정도가 된다. 한마디로 완전한 고립무원의 세계에서 혼자만의 상상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셈이다. 이로 인한 고통과 부담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가족들은 걱정의 단계를 넘어서 두렵고 무섭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 예방을 위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세상에서 소외된 채 불만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등 사회적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내 가족 중에, 우리 이웃에 은둔형 외톨이가 외롭게 살고 있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은둔형 외톨이

대구시정신보건센터 산하의 8개 구'군별 정신보건센터에는 은둔형 외톨이 유형의 정신질환자들의 상담 건수가 늘고 있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1년에 몇 건 되지 않던 이런 유형의 상담 건수가 지난해부터 한 달에 2, 3건 접수될 정도로 잦아지고 있다는 것.

달서구 정신보건센터에는 최근 30대 후반 남성이 찾아왔다. 그는 몇 년간 사회적으로 단절된 상태로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온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뒤, 사회를 향한 증오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남성을 담당한 상담사는 "섬뜩할 정도의 사이코패스적 기질까지 드러내 순간 무섭고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 남성은 '나는 돈도 없고, 따뜻하게 받아주는 사람 하나 없고, 뭘 잘하는 것도 없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반복되는 인생의 실패 경험과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생겨난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케이스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은둔형 외톨이일 경우 다른 식구들까지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가 된다. 은둔형 외톨이 생활 6년째의 오빠를 둔 한 여성은 그 고통을 호소할 길이 없어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오빠는 여동생에게 온갖 몹쓸 짓을 하고도 오히려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며, 폭력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부모는 자식을 제대로 보살펴 줄 형편이 되지 못한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보면, 무조건 욕을 하고 때리기만 할 뿐 단 한 번도 아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다고 한다.

여동생은 오빠가 은둔형 외톨이로 변한 이유에 대해 "아버지는 만취한 상태에서 오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잦았다. 오빠가 스무 살 무렵, 어머니가 오빠를 살리기 위해 월세 10만원짜리 방에서 6개월을 살게 했다. 오빠는 그때부터 가족과 멀어지지 시작했고, 시간이 지마면서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고 털어놨다. 바깥 세상과는 완벽하게 단절된 채 쪽방에서 살아가는 은둔형 외톨이는 체중이 100㎏을 훌쩍 넘을 정도이며, 자신과 의견과 안 맞으면 그 누구에게라도 불처럼 화를 내며 달려든다. 심지어 어머니에게도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는 것은 물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흉기를 들어 위협하기도 한다는 것.

◆해결책마저 요원한 은둔형 외톨이 범죄

은둔형 외톨이는 정신보건센터나 복지관에 가면 도움을 받을 길이 있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다행히 상담을 시작했다고 해도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아 상담이 중단되는 사례들이 많다고 한다. 몇 번 상담을 하다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구시정신보건센터 송경희 사업연계팀장은 "은둔형 외톨이의 묻지마 범죄로 인해 사회적으로 떠들썩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들의 사례를 찾아내고 미리 예방하는 것은 힘들다"고 털어놨다.

달서구정신보건센터 전문 상담사들은 "은둔형 외톨이로 인해 가족이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있지만 막상 이들을 만나러 가는 것은 쉽지 않다. 하물며 이들이 스스로 정신보건센터를 방문하는 사례는 찾기 드물다"고 밝혔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전체 120만 명 정도의 히키코모리 중 20,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60%를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인터넷 중독자가 급증하고 있는데다, 특히 인터넷 중독자 중 청소년 비율이 높다는 점을 고려해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실태 조사와 함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묻지마 범죄'의 가해자 중 상당수가 은둔형 외톨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부산에서는 은둔형 외톨이가 한 호프집에서 흉기로 업주 최모(55'여) 씨의 목을 찔러 살해하고 함께 있던 종업원 손모(56'여) 씨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끔찍한 살해범은 8년 전 이혼한 뒤 고시텔에서 은둔생활을 해왔으며, 경찰조사에서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두 여성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심리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로 오랜 시간을 보낸 이 남성이 사회적으로 단절되고, 경제적으로 낙오된 생활 속에서 쌓인 분노를 통제하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분석했다.

담배가 떨어질 때만 집 밖으로 나가는 등 수년간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온 울산의 한 남성은 수퍼마켓 여주인에게 묻지마 칼부림을 했다. 경찰 조사결과, 중졸 학력의 이 남성은 3년 전부터 직업 없이 혼자 방에 틀어박혀 지내왔다고 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적응장애 ▷불안장애 ▷기분장애 ▷강박장애 ▷인격장애 ▷통합실조증 ▷대인공포증 ▷발달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지적장애 ▷학습장애 등의 정신장애를 함께 갖고 있다. 또 오랜 고립 생활로 인해 대개 우울증, 대인기피증, 폭력성, 공격적 성향을 드러내는 경향이 짙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