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의심과 빛나는 우정에 관한 이야기
19세기 말, 라인 강변의 한 작은 마을에서 어린아이가 살해된다. 살인범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레 사람들의 의혹이 한 남자에게 몰린다. 단지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독일 청소년문학 작가 빌리 페르만의 소설 '이웃집에 생긴 일'은 지기의 이웃집 꼬마 잔이 칼에 찔려 헛간에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지기의 아버지 발트호프는 성실하고 근면한 도축업자로 마을에서 인정받는 선량한 시민이다. 어머니는 착실한 가정주부이고, 누나 루트는 이웃집 대장장이 청년 게르트를 애인으로 둔 아름다운 처녀이며, 지기는 김나지움에 다니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다. 처음에 사건은 지기 가족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였다. 유대인에 대한 막연한 악의를 갖고 있는 몇몇 이웃의 불확실한 증언이 전부인데도 여론은 서서히 지기의 아버지 발트호프를 살인범으로 몰고 간다.
뚜렷한 증거가 없어 발트호프의 무죄가 분명해 보이는데도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발트호프의 무죄를 말하지 못한다. 사건 당일 발트호프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증인인 대장장이 청년 게르트조차 이웃들이 일감을 가져다주지 않아 어려움에 처한다. 게르트는 이웃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 발트호프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되며, 루트와도 사이가 멀어진다. 가족의 생업은 위기를 겪게 되고, 체포와 구금, 오랜 재판 속에서 발트호프 가족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사건이 먼 곳까지 알려지고 신문에도 보도되면서, 멀리서 낯선 청년들이 찾아와 지기를 폭행하거나 지기 집에 불을 지르기까지 하여 발트호프 가족은 마침내 마을을 떠나게 된다.
책 마지막 부분에 꼬마 잔을 죽인 진짜 범인이 저수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얀 마리스라는 떠돌이 부랑자가 범인이었다. 사건을 수사한 훈트 형사반장은 처음부터 그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여론에 의해 이미 사건의 심판이 끝난 상태라 뒤집기 어려웠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지기 가족을 의심하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발트호프의 무죄를 믿고 지기를 응원해주는 유일한 사람은 지기의 친구 카를이다. 사람들의 무고와 의심, 고립 속에서도 카를은 지기를 응원한다. 카를이 세상 사람들의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 울피우스가 들려준 이야기 덕분이다. 아버지 역시 대학시절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으나, 한 친구의 우정으로 어려움을 벗어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가족과 함께 멀리 떠나게 되어 카를과 헤어지는 자리에서 지기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주머니칼을 카를에게 선물한다. 카를은 지기 가족에게 일어난 일과 같은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아이들에게 이 추악하고 불행한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지기가 선물해준 칼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한다. 책이 끝나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장'에서 카를 울피우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1938년 크리스탈나흐트(유대인 상점에 대대적인 방화와 약탈이 자행된 1938년 11월 9일을 이르는 말로, 거리를 가득 메운 유리창 파편들 때문에 '깨진 유리의 밤'이라고 불린다)에 카를 울피우스는 마흔아홉 살이 되었다. 그는 37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면서 600명이 넘는 젊은 청년들에게 발트호프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을 들려주었다. 그럼에도 이날 밤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더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었다. 카를 울피우스 같은 사람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두 소년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자,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종교나 인종, 민족 같은 '차이'들이 종종 타인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을 낳긴 하지만, 평범한 한 가족을 철저히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사회성 있는 주제의식에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
수성구립 용학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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