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열풍 일조 무료 자막 제작자, 그들은 왜?

입력 2012-08-25 07:05:59

30분 1회 분량 3,4시간 걸려…영어공부도 되고 칭찬도 좋고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 1' 영상 캡처 사진.

'미드'(미국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영어로 된 대사를 무료로 번역해 주는 '자막 제작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제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 불특정 다수에게 무료로 자막을 제공하는 이들은 미드 열풍의 숨은 주역이다.

◆좋아해서 베푼다

직장인 이모(31) 씨는 미드 마니아 사이에서 'YH 형'으로 통한다. YH는 이 씨가 영문 자막을 번역할 때 사용하는 닉네임. 그가 한글 자막을 입힌 미드는 '오즈'와 '보드워크 엠파이어', '안투라지'시리즈들.

3년 전 이 씨가 처음 자막 제작에 뛰어든 것은 단순한 관심 때문이었다. 이 씨는 "즐겨보는 미드가 한글 자막이 완벽하지 않거나 자막이 없는 경우가 있어 자막 제작을 시작했다. 어차피 만든 것을 남들하고 공유하고 싶어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30분 분량 1회를 번역하는 데 드는 시간은 3~4시간. 이렇게 열심히 해도 금전적인 보상은 전혀 없다. 이 씨는 "번역을 하면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대사를 한 문장씩 다시 들으며 작품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데다 영어 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말했다.

최근 이 씨 같은 개인 자막 제작자들이 늘고 있다. 영어 실력을 갖춘 미드 애호가들이 한글 자막을 제작해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공급하기 때문. 예전에 포털 사이트인 네이트 클럽 'ND24'를 시작으로 조직적으로 생산됐던 한글 자막은 이제 한 사이트에 '기미갤'(기타'미국 드라마'갤러리)이라는 게시판이 생기면서 개인 자막 제작에 불을 붙였고, 미국 현지에서 방영되면 곧바로 한글 자막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박종서(26'경북대 전자전기컴퓨터학부 4) 씨도 미드 자막 제작이 취미다. 그는 1년 6개월 동안 '오피스'와 '팬암' 등 미드 50여 편을 번역했다. "자막을 빨리 달라"는 팬들의 성화와 압력에 못이겨 시험 기간에도 짬을 내 번역을 한 것도 수 차례다.

박 씨는 "즐겨보던 미드의 자막 제작자가 회사원이었는데 출장이나 업무가 많으면 자막을 올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 답답한 마음에 자막을 만들었고 이제는 취미 생활이 됐다. 자막 만드는 게 즐겁기도 하지만 '잘 봤다. 고맙다'고 칭찬하는 이메일을 받으면 더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자막제작자 분석한 연구 눈길

최근 미드 자막 제작자들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나왔다.

경북대 정책정보대학원 김수정 씨의 석사학위 논문인 '인터넷에서의 친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미드 자막 제작자 117명을 대상으로 4주간 온라인 조사를 실시했다.

논문에 따르면 자막 제작자들은 전문적인 통'번역가가 아니라 '일반인'이라는 점. 직업군에 응답한 105명 중 절반 이상인 58명(55.2%)이 학생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회사원 16명(15.2%), 공무원도 5명(4.8%) 순이었다. 학력을 보면 대학교 재학이 40명(38.1%)으로 가장 많았고, 전문대 졸업 3명(2.9%), 고졸 6명(5.7%)이었다.

심리학적 분석으로는 경제적 이익없이 불특정 다수에게 무료로 자막을 제공하는 이 같은 행위를 '친사회적 행동'으로 보고 있다.

논문의 책임저자인 경북대 김지호(심리학과) 교수는 "번역한 대본을 타인과 공유하며 얻는 자기 만족과 영어 실력을 향상시켜 준다는 개인적 이익 때문에 자막 제작을 하는 것"이라며 "이런 행동은 마녀 사냥과 무조건적인 비판으로 부작용이 난무하는 온라인 세상에서 자막 제작자들이 순기능적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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