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게릴라 콘서트 이만한 무대 있나요"…대구 거리의 악사 공연 '버스킹'

입력 2012-08-25 07:09:38

이달 15일 오후 대구 도심에서 깜짝 버스킹을 열어 수십 명의 관중을 모은 주인공은
이달 15일 오후 대구 도심에서 깜짝 버스킹을 열어 수십 명의 관중을 모은 주인공은 '가로등라디오'라는 밴드였다. 대구 도심과 대학가 등 대구경북은 물론 부산 해운대 등 전국을 돌며 버스킹을 하고 있다. 가로등라디오 제공
대구 중구 교보문고 앞에서 정기적으로 버스킹을 하고 있는 밴드
대구 중구 교보문고 앞에서 정기적으로 버스킹을 하고 있는 밴드 '마쌀리나'
지역 출신 인기 버스킹 밴드
지역 출신 인기 버스킹 밴드 '십센치'
버스킹 밴드 출신으로 유명세를 얻은
버스킹 밴드 출신으로 유명세를 얻은 '버스커 버스커'

이달 15일 오후 6시쯤 대구 도시철도 중앙로역 2번 출구 인근. 젊은 남녀 3명이 길 위에 서더니 통기타'베이스기타'하모니카'젬베'까혼 등의 악기에다 마이크'소형앰프 등의 공연 장비를 설치했다. 준비를 마친 이들이 연주를 시작하자 길을 걷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구경하기 시작했다. 하모니카를 불며 손으로는 타악기인 까혼을 두드리다가도 통기타를 바꿔 들고 튕기는 등 다채로운 연주 솜씨에 수십 명의 관중들은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윤도현 밴드의 '나비', 버스커버스커의 '소나기', 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주제가 등 1시간여 동안 연주를 한 뒤 막을 내렸다. 연주자들은 주섬주섬 악기와 공연 장비를 정리했고, 관중들도 다시 가던 길을 갔다.

공휴일(광복절) 저녁의 짤막했던 한마당 잔치는 자연스러웠다. 누군가에겐 번듯한 무대가 아닌 길바닥에서의 공연이 낯설었을지 모르지만 상투적인 네온사인 불빛만 가득하던 대구 도심의 밤 분위기에 소금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런 '깜짝' 공연이 최근 대구 각지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물론 거리 공연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기관이나 단체에서 주최한 행사가 많았다. 하지만 이런 공연은 개인과 개인이 만나 즉흥적으로 벌인다. 또 이전에는 낯설어하던 시민들도 좀 더 익숙하게 거리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다. 바로 '거리의 악사'들이 최근 선호하고 있는 '대세' 공연 형식인 '버스킹'이다.

◆거리 공연의 대명사, 버스킹

버스킹(busking)은 뮤지션들이 거리에서 금전함(tip box)을 앞에 두고 행인들을 상대로 공연하고 돈을 받는 것을 가리킨다. 생계를 해결하고, 공연 실력도 쌓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음악' 연주 외에 다양한 거리 예술 행위도 버스킹에 포함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거리의 악사'를 가리키는 의미로 굳어졌다.

버스킹이 최근의 현상인 것은 아니다. 미국'유럽 등지에서는 오래 전부터 가난하거나 아마추어인 뮤지션들의 공연 형식으로 애용돼 왔다. 2008년에는 버스킹으로 만난 연인의 사랑을 소재로 한 아일랜드 영화 '원스'가 국내에서 흥행했다. 주인공 글렌 한사드가 거리에서 홀로 통기타를 연주하는 버스킹 장면이 국내에 통기타 열풍을 불러일으킨 것. 다만 초점은 버스킹이 아닌 통기타에 맞춰졌다. 영화 속 '통기타 연인'을 선망한 젊은 남'녀들이 1970, 80년대 '세시봉' 세대 이후 다시 통기타를 들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버스킹은 서울 대학로나 홍대 등 인디 음악의 중심지에서 수 년 전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버스킹을 통해 대중적으로 '뜬' 뮤지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지역 출신으로 서울에서 버스킹으로 유명해진 2인조 인디 뮤지션 '십센치'도 한 예다. 그리고 지난해 한 케이블 방송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버스킹 밴드인 '버스커버스커'가 유명세를 얻으면서 선망의 대상으로까지 올라섰다.

이후 '거리에서 연주를 해 생계를 해결한다'는 버스킹의 본래 의미는 약해졌고, 대신 '거리에서 끼를 발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공연 형식'의 의미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버스킹은 거리 공연 자체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자리 잡고 있다.

◆대구의 버스킹 명소

대구에도 버스킹 문화가 싹이 트면서 버스킹 명소도 만들어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2'28공원이다. 그런데 공원 안에 마련된 공연장이 아니다. 공원 바깥 좁은 인도 변에서 공연이 벌어진다. 공원 안보다 통행량이 많기 때문이다. 버스킹의 제일 요건은 공연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노출시키는 것. 악기 몇 개로 간소하게 벌이는 버스킹은 좁은 장소에서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인도 변은 공연 장소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대구에서는 이런 장소로 도시철도 중앙로역 2번 출구, 중구 교보빌딩 앞, 중구 봉산문화회관 앞 등이 선호되고 있다. 경북대 북문, 계명문화대 돌계단 등 젊은이들이 늘 붐비는 대학가도 명소다. 물론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이나 두류공원 등은 전통적인 공연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즉, 연주자 서너 명 정도가 설 수 있고, 최소 몇 명이라도 관중을 모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면 언제든지 버스킹이 가능하다. 일정을 잡고, 무대와 음향 장비를 설치해야 하는 등 몇몇 조건을 반드시 갖춰야 하는 기존 거리 공연에 비해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진입 장벽이 낮은 셈이다.

◆버스킹의 매력은?

버스킹은 물리적 진입 장벽은 물론 심리적 진입 장벽도 낮다. 대구 중구 교보문고 앞에서 매월 둘째'넷째 주 토요일 오후 6시 버스킹을 하는 밴드 '마쌀리나'의 멤버 임홍빈(26) 씨는 버스킹에 대해 "연주자와 관중 모두 서로 부담이 적은 공연 형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주가 틀려도 관중들은 오히려 재밌게 받아들이고 격려해준다. 그래서 전문 연주자가 아닌 초보자들도 용기를 내 버스킹을 한다. 최근 인터넷 카페를 통해 공연 멤버를 모으고, 정보를 나누는 사람들이 꽤 늘었다"고 말했다. 어릴 적 교습소에서 몇 달 배운 피아노 실력으로 멜로디언을 불고, 코드 몇 개를 외워 통기타를 연주하고, 정 안 되면 탬버린이라도 치며 버스킹을 즐기겠다는 사람들이 적잖다는 것.

이렇듯 버스킹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악기가 있어야 한다. 이전에는 희귀했던 악기들이 최근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고 있는 것도 버스킹 문화 전파에 한몫하고 있다. 대학생 이준호(24'대구 동구 율하동) 씨는 최근 통기타와 타악기인 젬베를 구입했다. 친구들과 함께 버스킹 밴드를 구성했기 때문. 비용은 20만원 정도 들었다. 이전에는 갑절의 비용이 필요했지만 최근 저렴한 보급 기종이 많이 나오고 있다.

대구 중구 남산동에서 악기점을 운영하는 황경구(42) 씨는 "방송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통기타 연주가 인기를 끌면서 통기타도 기존 7080 트렌드에서 벗어나 젊은 세대를 위한 보급 기종이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희귀했던 타악기인 젬베'봉고'까혼 등도 인디 밴드들이 전면에 배치해 화려한 연주를 구사하면서 인기를 끌어 시중 악기점에 필수로 진열되고 있다.

버스킹의 매력은 무엇일까? "일단 한 곡 연주하면 사람들이 모여들어요. 그런 다음 이런저런 코멘트를 하며 공연을 진행하면 됩니다. 못한다고 욕하는 사람은 요즘 없어요. 그러니 자신감이 생기죠. 또한 스피치 능력도 늘고, 내가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된 듯한 짜릿한 기분을 느낍니다." 이준호 씨는 버스킹의 매력으로 대중 앞에 서서 자신을 표현하며 얻는 쾌감을 꼽았다.

고3 수험생 박지현(19) 군은 "대학에 가기 위한 막바지 공부를 하느라 바쁘지만 주말 저녁이나 모의고사를 친 날 오후에는 예전에 교내 밴드 동아리를 하던 친구들과 함께 스트레스 해소를 하러 거리로 나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청소년들 사이에 통기타가 나이키 신발이나 노스페이스 점퍼처럼 유행하면서 한 반에 네댓 명은 통기타를 튕기고, 이전에는 실내에서만 연주하던 것을 요즘은 밖에 들고 나와 연주하기를 즐긴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앞에 서게 된다"고 말했다.

◆거리는 늘 떠들썩하길 원해

버스킹은 단순히 자유롭기만한 거리 공연 형식이 아니다. 도심 속 공공 장소 곳곳을 활발한 문화의 장으로 만드는데 의의가 있다. 큰 비용은 들지 않는다.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거리 공연 예술가들을 그저 거리 위에 모시기만 하면 되는 것. 그러면서 서울의 대학로나 홍대는 관광객을 끌어 모은다.

버스킹은 사실 서양의 공연 문화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옛적에 있었다. 유랑 연예인 집단이었던 남사당패'대광대패'솟대쟁이패 등이다. 이들 모두 거리를 무대로 풍물'줄타기'대접돌리기 등 소리와 재주를 팔고 대신 금전이나 곡식 등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관람료를 받는 것이 필수냐 부수냐 하는 부분만 차치하면, 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하며 서민들에게 신명과 웃음을 선사해줬다는 점은 지금의 버스킹과 같은 맥락이다. 어느 시대에나 거리는 떠들썩해지기를 원한다. 그 역할을 이전에는 하층민으로 구분됐던 광대들이 맡았지만 지금은 끼를 발산하고픈 누구든지 할 수 있고, 또 하고 있다는 얘기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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