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숨겨진 의미 해독 코드 제시

입력 2012-08-25 07:35:56

불국토를 꿈꾼 그들/ 정민 지음/ 문학의 문학 펴냄

2009년 미륵사지 서탑 기단부에서 수습된 사리 봉안기 금판은 고대사학자들을 일순간 혼란케 했다. 금판에 새겨진 194글자의 사리 봉안기는 당초 선화공주의 발원으로 기록된 삼국유사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봉안기에는 미륵사 창건의 주체가 사탁씨 왕비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이를 통해 과연 삼국유사 기록의 신뢰성은 깨지는 것일까. 나아가 후대까지 회자되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낭만적 사랑 이야기는 한 편의 허구적 설화에 불과한가.

하지만 '불국토를 꿈꾼 그들'을 펴낸 지은이 정민 교수(한양대 국문과)는 그렇지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이는 당시 백제 왕궁의 복잡한 권력 구조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는 것. 지은이는 '일본서기'등을 참고해 의자왕은 사탁씨의 소생이 아니라 선화공주의 소생이며 미륵사 창건의 계기를 마련하고 그 일을 시작했던 선화공주가 일찍 세상을 뜬 탓에 사리봉안기에는 사탁씨 왕비의 이름만 등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백제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하게 된 것은 신라를 불국토로 만들려고 한 진평왕을 벤치마킹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이번 봉안기 발견은 그간 석연치 않던 의자왕의 너무 늦은 세자 책봉과 즉위 직후의 정변 내막, 왕권과 귀족 세력 간의 보이지 않는 갈등구조 등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가능케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삼국유사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에 함축되고 가려진 의미를 밝히는 코드를 제시한다. 삼국유사는 상상력의 보물창고라고 할 만큼 당대의 다양한 문화와 삶을 담고 있지만 삼국사기와 달리 표현이 은유적이고 복잡하며 귀신과 용 등이 등장하면서 신뢰성을 의심케 한다. 독자로서는 알 듯 말 듯한 이야기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베일에 쌓여 있는 삼국유사를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파헤치며 행간의 숨겨진 의미는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또 다른 단원을 한 번 보자. 지혜로서 낭도에서 왕이 된 경문왕의 침전에서 날마다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왕의 침전에 매일 날이 저물면 무수한 뱀이 몰려들었으나 왕은 "뱀 없이는 편히 잘 수 없다"며 쫓아내지 못하도록 했고 매번 잘 때 혀를 내밀면 온 가슴을 덮었다는 것. 이에 대해 지은이는 재미있는 풀이를 하고 있다. 경문왕의 침전에 몰려든 뱀들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정변에서 왕을 지키는 수호세력이라는 것. 이들은 바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성골 귀족들 사이에서 불안한 왕권을 지켜내기 위해 침전을 지켰던 국선 응렴 시절의 낭도들이었다는 얘기다. 또한 '혀가 온 가슴을 덮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지은이는 장광설(長廣舌)이 떠오른다고 했다. 장광설은 얇고 부드러우며 길게 내밀면 얼굴을 감쌌다는 석가모니의 혀를 이르는 말로, 지혜를 뜻한다. 왕이 잘 때에만 혀를 내밀었다는 건 자신의 지략을 평소에는 감췄다가 추종세력이 곁에 있을 때만 내보였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지은이는 머리말을 통해 "삼국유사는 허튼 말이 하나도 없다. 해석이 어려운 것은 해독의 코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은이의 말처럼 이 책은 블랙박스처럼 느껴지는 삼국유사를 신선하고도 재미있게 풀어놓은 해독서인 셈이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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