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시카고/ 정한아 지음/문학동네 펴냄
'기지촌'이란 단어는 이제 낯설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술과 웃음을 팔며 생계를 유지했던 '양공주'의 추억은 먼 옛날의 일일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는 기지촌의 삶이 계속되고 있다. 책의 제목인 '리틀 시카고'는 기지촌을 일컫는 말이다.
이곳에 열두 살 선희가 산다. 미군들을 상대로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선희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자기앞의 생'의 모모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 '새의 선물' 진희 등이 떠오른다. 이야기 속엔 어른들의 세계에서 더 속 깊은 아이로 자라는 시간이 녹아 있다. 게다가 기지촌이라는 그 독특한 공간적 특성으로 인해 선희는 그 누구보다 더 특별한 아이로 그려진다.
사랑과 삶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열두 살 선희의 눈과 가슴은, 때로 천진한 아이의 것이었다가, 어른의 것이었다가, 엄마의 것이었다가, 때로 여자의 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소설의 말미, 골목이 곧 인생이나 마찬가지였던 어른들, 그 안에서 함께 어울려 지내던 친구들의 모든 슬픔과 아픔들을 들여다보고 보듬어주던 선희는 제 슬픔과 맞닥뜨린다. 그 슬픔을 모두 제 것으로 받아들인 후 선희는 어쩌면,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된다. 차마 흘리지 못한 눈물, 보이지 않는 슬픔과 아픔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싸안은 채 태연하게 웃으며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간다.
작가는 '리틀 시카고'를 쓰기 위해 한 달 동안 기지촌 클럽에 위장취업까지 했다고 한다. 작가는 "사춘기 우울하고 절망하던 시절 저를 일으켜 세운 게 소설이었어요. 그래서 빛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인간으로 살고 있어서 참 좋다' 이런 소설을 쓰는 게 제 바람입니다"라고 밝혔다. 233쪽. 1만2천원.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우원식 "최상목, 마은혁 즉시 임명하라…국회 권한 침해 이유 밝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