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백일장] 땅에게 기쁨을/고향의 샘/그날 사이에/금상첨화/도화지/반가운 시골집

입력 2012-08-24 07:04:26

♥시1-땅에게 기쁨을

가느다란 몸뚱이가 꿈틀대며 움직인다

여자, 혹은 남자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의 몸에서 태어난

만물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그 몸

슬쩍 붉은빛 홍조를 띠는 갈색 몸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땅을

파고들고 파고들어 헤집어놓고

메마른 땅에서 죽어가면서도

결코 꿈틀거림을 멈추지는 않는다

언제나 느릿느릿 몸을 움직이며

척박한 땅에 기쁨을 선사한다

남효정(김해시 삼계동)

♥시2-고향의 샘

고향 샘가에 향나무 있고

채송화, 봉선화 예뻤다

한낮 뙤약볕에

두레박질을 하면

물은 한 사발만 올라와

물동이 못 채운 채 머리에 이고 와야 했다

숨바꼭질할 때

도란도란 속삭였던 소꿉동무 생각나고

샘 청소 하는 날

온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삿갓 쓴 아저씨 물통 타고 조심조심 내려가

찌꺼기까지 퍼 담아 올려 보내고

입술이 시퍼렇게 되어 올라왔다

할머니 되어도

샘에 떨어지는 꿈 무서운데

지금은 찾는 이 없어 물 넘치나

내 마음엔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편재영(김천시 교동)

♥시3-그날 사이에

이상하게 썰물처럼 힘이 빠져나가는 밤을 견뎌내는 사이에

어둠과 썰물을 밀어내는 파도에서 서성이는 내 그림자.

새벽의 윤곽을 푹푹 꺼내는 사이에

품이 제법 깊은 파도에서 파도로 흰 빗금을 긋는 내 눈동자.

잠이 덜 깬 모래알을 어루만지는 사이에

희게 빛나는 아침의 힘줄 사이로 흠뻑 뒤집어쓴 그날 밤의 두근거림.

그 곳에 날아온 새들과 한 약속들을 세어보는 사이에

이곳에서 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님을 대견한 듯 그저 길을 따라 뚜벅뚜벅.

류재필(대구 달서구 성당1동)

♥동시1-금상첨화

우리아빠는 일도 잘하고 컴퓨터도 잘하고

방귀만 안 뀌면 금상첨화에요.

우리엄마는 예쁘고 요리도 잘하고

잔소리만 안하면 금상첨화에요.

김효신(5세, 대구시 달서구 두류동)

♥동시2-도화지

우정이란 도화지에

추억이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한 번씩 불신과

싸움이란

얼룩이 묻지만

화해라는 지우개로

얼룩을 지우고

계속 그림을 그린다

정이라는 연필로 스케치를 하고

추억이라는 색연필로 색칠해서

곱게 접어

미래를 향해 날린다

나경민(대구 상원중학교 3학년)

♥동시3-반가운 시골집

할아버지 할머니 반갑습니다.

누렁이도 멍멍이도 오랜만이네.

앞마당에 꼬꼬닭은 아장아장 걸음마하고

나무 위에 참새들이 장단 맞추네.

뒤뜰에 토끼들은 오물오물 거리고

내 동생이 쫑알쫑알 반가워한다.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되어서

귀뚤귀뚤 귀뚜라미 자장가 소리에

반가운 시골집의 하루가

아쉽게도 조용히

잠이 듭니다.

조상현(대구 달서구 상인1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박현옥(김천시 다수동)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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