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창] 불완전한 인간들

입력 2012-08-20 07:37:58

흥미롭고도 안타까운 정경이다. 인도 열대림에서는 원숭이를 사냥할 때 작은 나무 상자 속에 바나나, 호두 따위를 미끼로 놓아둔다고 한다. 위쪽에는 가까스로 손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만 뚫어둔다. 먹을거리를 움켜쥔 원숭이는 사냥꾼이 다가와도 끝내 손을 빼지 못하고 잡히고야 만다. 제 손아귀에 들어온 것은 한사코 놓지 못하는 원숭이의 습성을 이용한 사냥법이란다. 차츰차츰 다가오는 사냥꾼의 발걸음과 완강하게 버티는 제 손가락들 사이에서 숨가쁘게 흔들리는 원숭이의 발간 눈동자가 보인다. 이 광경이 결코 강 건너 밀림의 먼 불빛으로만 보이지 않기에 더 더욱 안타깝다.

'퍼펙트 스톰'(The Perfect Storm, 2000)은 완전한 폭풍과 사투를 벌리는 불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타고난 뱃사람으로 인정받던 빌리 선장은 요즈음 영 죽을 쑤고 있다. 새로운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신출내기 바비는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에 속이 다 타들어간다. 선주의 노골적인 비아냥거림에 자존심을 구긴 선장은 이런저런 곡절로 처지가 다급해진 선원들과 함께 쫓기듯이 바다로 다시 나선다. 연일 저조한 어획과 태풍이 밀려온다는 예보, 이어지는 불길한 조짐들로 선원들은 다들 귀항을 요구한다.

선원들에게마저 불신을 당했다는 노여움에 선장은 도리어 더 먼 바다로 나아가자고 우긴다. 상처받은 자존심이라는 완고한 껍데기에 발목 잡히며 비극이 준비되는 첫 번째 순간이다. 다른 선단들이 모두 철수한 먼바다, 기대 이상의 풍어가 쏟아진다. 호사다마라고, 엄청난 태풍이 또 다른 두 개의 기상전선과 맞부딪쳐 지금껏 보지 못한, 완벽한 폭풍이 몰려온단다.

엎친 데 덮친 꼴로 저장냉동기마저 고장이 나고. 배에 그득한 고기를 썩히더라도 일단 피신하느냐, 눈 딱 감고서 폭풍 속으로 냅다 뛰어드느냐. 절체절명의 갈림길이다. 천신만고 끝에 이룬 만선의 황홀한 꿈, 차마 떨칠 수 없는 유혹에서 손목을 빼지 못하며 두 번째 파국이 다가온다.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온전하게 죽는 방법만큼은 미처 배우지 못했다는 선장의 때늦은 후회도, 이제부터는 일확천금을 넘보지 않고서 소박하게 살아가겠노라는 신출내기의 절절한 다짐도 이젠 소용없다. 완전한 폭풍이 삼켜버린 불완전한 인간들의 욕심과 노여움 그리고 어리석음들.

사냥꾼들에게 묶여가는 원숭이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밑도 끝도 없는 구렁텅이로 내동댕이쳐진 인간들의 눈에는 또 무엇이 스쳐갔을까? "바꿀 수 없는 것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평심과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감하게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아주 오래된, 앞으로도 두고두고 우리들과 함께할 '마음의 평온을 비는 기도문'이다.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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