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서비스'도 곱다…

입력 2012-08-18 08:00:00

소통 첫 단추 호칭의 마법…일상 속의 호칭, 어떻게 부를까

"이모!" "아줌마!" "저기요!" "여사님!" "차림사님(?)" 식당에서 여성 직원을 부를 때 독자들은 어떤 호칭을 붙이시나요?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과연?"

김춘수의 시 '꽃'에 따르면 호칭(이름)은 상대방을 꽃처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마법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쉽잖은 일이다. 호칭에 따라, 그 호칭이 놓이는 맥락에 따라 상대방을 활짝 웃는 꽃이 아닌 무표정한 목석(木石)이나 차가운 얼음으로 만들기도 하기 때문. 일상 속 '호칭 문제'를 살펴봤다.

◆'이모'부터 '여사님'까지

이달 9일 오후 대구 북구 산격동 한 식당. 이곳은 인근에 대학이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오고, 직장인들도 꽤 찾는데다, 저녁이면 외식을 하러 오는 가족 단위 손님들이 적잖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차리는 직원은 40대 여주인과 역시 40대인 여성. 남녀노소 다양한 손님들이 이 두 명의 여성을 어떻게 부르는지 조사하기 좋은 곳이었다. 기자는 밥을 최대한 천천히 먹으며 약 1시간 동안 귀를 '쫑긋' 열어 호칭을 수집해 수첩에 기록했다.

조사 대상은 모두 30명. 이들이 부른 호칭 순위 1위는 '이모'(12명)였다. 2위는 '아줌마'(7명). 3위는 '저기요'와 '여기요'(5명). 뒤이어 '사장님'(3명), 부르지 않고 주문받으러 오길 기다림(2명), '여사님'(1명) 순이었다.

부르는 호칭이 이렇게 다양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대학생 박아영(25'여) 씨는 "자주 찾는 단골집에 가면 친근한 느낌의 이모, 그 외에는 아줌마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하는 박모(40) 씨는 같은 식당에 가도 때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다르다고 했다. "혼자 밥을 먹으러 가면 이모라고 불러요. 하지만 가족과 함께 가면 조금 정중한 어조로 '아주머니'라고 부릅니다. 실제 친척도 아닌데 이모라는 호칭은 자녀 교육상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직장인 장현진(29'대구 중구 대봉동) 씨는 "우리 엄마 세대들은 '여사님'이라고 불러주면 좋아한다. 식당에 가면 혹시라도 서비스 반찬을 조금 더 줄까 싶어 그렇게 부르는 습관이 생겼다. 행여 반찬은 더 안 주시더라도 주문을 받으며 웃으시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직업 호칭 격상 시대

그런데 이날 조사에서 듣지 못한 호칭이 하나 있었다. 바로 '차림사'다. 지난해 11월 한국여성민우회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식당 노동자 호칭 공모대회'를 열어 선정한 호칭이다. 말 그대로 밥을 차려준다는 뜻이다. 민우회 관계자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고, 음식을 차리는 업무의 전문성을 강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호칭을 선정하게 된 핵심 배경은 식당 근무자들이 단순히 음식을 차리는 '하인'으로 여겨지며 자존심과 인격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민우회의 조사에 따르면 식당 근무자의 27%가 "손님으로부터 '무시하는 태도나 반말'을 듣는 등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래서 호칭을 바꾸는 것을 시작으로 인식을 개선한다는 취지였다.

호칭을 바꿔 특정 직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이전에도 있었다. 2004년에는 전국가정관리사협회가 출범해 식모나 파출부 호칭을 '가정관리사'로 바꿔 불러줄 것을 요구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지던 가사도 이제는 전문화가 요구되는 시대라는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의사의 조수라는 맥락에서 불리던 간호원이라는 호칭도 1980년대 의료법 개정과 함께 '간호사'로 바뀌었다.

◆사(師)'사(士)'사(事)…

그러고 보니 변경된 호칭의 공통점은 뒤에다 '사'자를 붙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직업 호칭에는 세 가지 '사'가 주로 쓰인다. '스승 사'(師)와 '선비 사'(士) 그리고 '일 사'(事)다. 스승 사(師)는 교사'목사'선사(스님의 높임말) 등에 쓰인다. 실제로 스승 역할을 하는 직업이나 그와 비슷한 위치에서 인간에게 가르침이나 이로움을 주는 직업군에 주로 쓰인다. 선비 사(士)는 박사'조종사'세무사 등에 쓰인다. 전문성과 기교를 요구하는 직업군에 주로 쓰인다. 일 사(事)를 쓰는 직업들은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다만 판사'검사'형사 등 일부 법조계 및 경찰 직군에 주로 쓰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에서 지위와 전문성을 인정받는 직업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무에게나 쉽게 하대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무원 사회는 이러한 '하위직' 인식을 제도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정부는 6급 이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2년 전부터 '대외직명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대외직명제란 6급 이하 공무원들에게 주무관'전문관 등 공식 호칭을 부여하는 제도다. 정부는 6급 이하 공무원들이 주사'주무'담당 등으로 불리며 민원인들에게 서류 떼기 등 잡무를 하는 '하위직 공무원'으로 인식돼 사기가 낮아졌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직급별 위화감을 해소하고, 민원인들이 너무 많은 호칭에 혼선을 겪는 문제도 없애기 위해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호칭은 호칭일 뿐?

직업에 대한 사회 인식이 개선되면서 뭉뚱그려 붙이는 호칭도 있다. '선생님'이 대표적이다. 한 예로 미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전문성을 갖춘 제품이나 서비스에 호감을 넘어 찬사가 집중되는 요즘, '실력 있어 인기 많은' 미용사나 피부관리사들에게 붙이는 호칭이 바로 선생님이다. 이전에는 언니, 혹은 아가씨, 심지어는 시다(일본어로 조수,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시다바다라키'가 어원)로 불리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사회 인식을 개선하는 것은 물론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원래는 연륜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는 호칭이 과공(過恭)으로 남발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에 대해 실제로는 해당 직업에 대한 사회 인식이 개선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박사님'변호사님'검사님 등 원래부터 사회 인식이 좋은 직업 호칭에는 '님'자가 자연스레 붙는다. 하지만 미용사님'피부관리사님'구두수선사님 등의 표현은 어색하고, 잘 쓰지도 않는다. 해당 직업을 바라보는 사회 인식이 덜 개선됐다는 것이고, 그래서 일단은 선생님으로 뭉뚱그린다는 얘기다.

◆일상 속 애매한 호칭 문제

직업 호칭 문제에서 조금 반경을 넓히면 일상 속에서 부닥치는 애매한 고민도 많다.

양모(26) 씨는 며칠 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카페 주인의 남편과 마주하게 됐다. 그러자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할지 갑자기 말문이 막혀 쩔쩔맸다는 것.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친근하게 '형님'이라고 할 수도, 그렇다고 '저기요'라고 할 수도 없었단다. 국립국어원의 표준화법에 따르면 남의 남편을 높여 이르는 호칭으로 '부군'이나 '사부님'을 쓴다. 같은 맥락인 '부인'과 '사모님'에 비해 생소하다.

친구가 결혼하면 그 부인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보통 형의 부인은 형수(님), 동생의 부인은 제수(씨)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는 친족 간에만 붙이는 호칭이다. 보통 제수씨라고 부르는 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표준화법에 따르면 '아주머니'나 '부인' 등으로 불러야 한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조선 시대 사극을 찍는 것처럼 어색하다.

표준화법 상으로는 맞지만 어감의 차이로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형과 형님의 어감 차이가 그렇다. 대학생 박모(27) 씨는 "아는 형들 중 따르고 존경하는 분은 형님이라 부르고, 그 외에는 형이라고 부른다. 또는 나이 차이가 10살 이상 나면 형님, 친구처럼 친근하면 형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동년배나 나이가 어린 경우에도 '김 형' '박 형' 식으로 호칭을 썼다. 요즘 젊은 세대는 잘 쓰지 않는 용례다.

미용실이나 옷가게 등에 가면 손님이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경우에도 직원들이 여성 손님에게는 "언니~"라고 하고, 남성 손님에게는 "삼촌~"이라는 호칭을 쓰는 경우가 많아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다. 이에 한 옷가게 직원은 "살갑게 접근해 구매를 유도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딱딱한 손님'고객님이라는 호칭 대신 쓴다"며 "나이가 어려보인다고 '동생'이라고 부르면 기분 나빠하므로 언니 혹은 삼촌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모'는 나이 들어 보인다고 인식해 기분 나빠할까 봐, '오빠'는 조금 도를 지나친 것 같아서 쓰지 않는단다. 그는 또 "노년층 손님이 올 경우 할머니'할아버지'어르신이라고 부르면 싫어한다. 정중한 느낌의 사모님'여사님'선생님 호칭만 사용한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은 각종 가족'사회'직업 호칭에 전통적인 언어 예절과 규범을 계승하면서 사회 변화도 수용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표준화법을 수정 및 보완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호칭 고민 세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면, 정답을 제시하기는 쉽잖아 보인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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