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흥의 이야기가 있는 음악풍경] 노래를 찾는 사람들 '사계'

입력 2012-08-18 08:00:00

보름 남짓한 일정으로 네팔을 다녀왔다. 히말라야의 또 다른 이름인 네팔은 사실 이번이 다섯 번째 방문이다. 그동안은 늘 트래킹을 하기 위해서였지만 이번에는 일을 하기 위한 방문이어서 그런지 바쁜 시간이었다.

신들의 나라는 변하고 있었다. 매캐한 매연, 자동차의 경적소리, 인간의 모습을 한 네팔은 여전했지만 공항을 빠져 나오는 순간, 개발을 서두르는 도시는 많은 곳들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타멜"(Thamel) 흥정 끝에 겨우 잡은 택시는 외국인들이 모이는 거리의 이름을 확인하며 달려 나간다. 운전기사는 요금을 흥정하던 여행자에게 서툴긴 하지만 끊임없이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작년 이맘때 쯤, 무스탕(Mustang) 지역을 트래킹하면서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네팔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아름다웠던 산간 마을에는 호텔들이 들어서고 며칠을 걸어야 갈 수 있었던 지역들은 신작로로 이어지고 있었다.

개발이 주는 이익의 몫이 누구의 것인지는 명확해 보였다. 주인을 잃은 빈집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버리고 도시로 모여들고 도시는 그들을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개발의 또 다른 이름은 빈곤의 약순환과 부의 양극화였다. 그렇게 네팔의 오늘은 우리의 1970, 80년대와 너무도 닮아가고 있었다.

카투만두 시내 번화가로 접어들 무렵, 붉은 점멸등이 깜박이고 있었다. 신의 나라에 인간이 만든 질서는 지켜질 수 없는 것일까? 신호등과 아무런 관계없이 차들은 뒤엉키고 그것을 마치 구경이라도 하듯이 그 신호등 위에는 까마귀가 허허롭게 쉬고 있었다.

문득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흰 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구름/짧은 셔츠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노찾사의 사계 중에서)

1970년 11월 13일 한 젊은이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의 죽음은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해준 것이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그의 절규는 이 땅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인간으로서의 각성을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절대적 빈곤의 퇴치라는 미명 아래 자행된 근대화는 결국 상대적 빈곤을 낳았고 그 상대적 빈곤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희생 속에서 근대화는 진행되었지만 그 희생의 보답은 결국 공동체의 붕괴와 양극화의 심화만을 초래했을 뿐이었다. 자본의 힘 앞에 인간은 그저 또 다른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전태일은 인간임을 선언했고 지식인들은 노동자들을 자신과 다른 부류의 인간으로 인식했던 산업화의 또 다른 공범이었음을 자성할 수밖에 없었다.

사계라는 노래는 그 각성의 시작점에 있었다. 많은 대학생들이 노동현장으로 뛰어 들었다. 정권은 위장취업을 학력 위조와 사문서 위조라며 범죄 취급을 하였지만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한 지식인들의 각성이야말로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일조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계는 한때 운동권 일부에서조차 노랫말이 너무 감성적이라는 이유로 외면을 받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노동현장의 고통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린 누이들에게 세상은 그저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꿈과 같은 것이고 현실은 늘 먼지 나는 공장의 어두운 골방 안의 소음이었음을 노래는 잔잔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 노래가 갖고 있는 밝고 경쾌한 리듬이 오히려 더 슬프다.

30년 쯤 전인 대학 2학년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지역의 섬유공장에 들어갔던 한 후배는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생계를 위해 재봉틀을 끼고 살았다. 그녀는 해고 통지를 받고 재봉틀을 끌어안고 울부짖던 어린 소녀들의 눈물을 지금까지도 결코 잊을 수 없노라고 말했다.

십 년째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있다는 운전기사의 서툰 한국말 속에서 갑자기 그녀의 말이 생각난 것은 신의 뜻이었을까? 인간의 의지였을까? 스치듯 지나는 네팔의 거리에 한글 간판들이 도드라져 보인다.

전태흥 미래TNC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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