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통행료, 역사, 자살, 상징…다리 A to Z

입력 2012-08-18 08:00:00

'동촌 구름다리'(앞)는 동촌유원지를 찾는 시민들의 '다리 건너기' 휴식 취향을 수십 년간 소화해왔다. 그 역할을 바로 옆에 조성된 '해맞이다리'(뒤)에게 물려주고 최근 폐쇄됐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 동구 효목동 동촌유원지. 이곳에는 일명 '동촌 구름다리'라 불리는 인도교가 있다. 1968년 세워진 이 다리는 40여 년간 통행료를 받고 운영돼 오다 최근 폐쇄됐다. 그런데 통행료라기 보다는 '탑승료' 혹은 '관람료'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시민들은 다리를 건너며 아찔함을 즐기고, 금호강의 경치를 관람할 수 있는 이곳을 '대구의 명물'이라고 불렀다. 곽영진(41'대구 서구 비산동) 씨는 "어릴 적엔 소풍으로, 조금 커서는 연인과 함께, 결혼 후에는 가족과 함께 구름다리를 찾았다"며 "대구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다리의 생태계

구름다리는 폐쇄됐지만 그렇다고 동촌유원지에 수십 년 동안 자리잡은, '다리 건너기'라는 시민들의 휴식 취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다리를 건너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계속 이곳을 찾고 있다. 동촌 구름다리로부터 역할을 물려받은 다리가 불과 수백m 옆에 세워졌기 때문. 지난해 개통한 인도교인 '해맞이다리'다. 세대교체를 한 만큼 기능도 업그레이드됐다. 이 다리는 도보는 물론 자전거로도 건널 수 있다. 밤이면 다리 외관에 주탑 색깔 조명 12개와 LED(발광다이오드) 조명 500여 개 등 화려한 경관 조명을 밝힌다. 다만 이전 구름다리를 건너며 맛보던 '아찔함'이 조금 싱거워진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고 보니 다리도 수명이 있고, 전성기와 쇠퇴기가 있어 세대에서 세대로 교체된다. 생물과 닮았다. 다리도 생태계를 이루며 숨 쉬고 있는 셈이다.

◆다리의 현대사

우리나라 도로의 교량은 산업화와 함께 그 수가 증가했다. 산업화 바람이 한창이던 1970년대가 기점이다. '2011년 전국교량현황조서'에 따르면 전국 도로 교량 개수는 1970년 9천332개(총연장 26만7천600m)에서 2010년 2만7천381개(총연장 261만8천392m)로 늘어났다. 40년 동안 수량은 3배, 총연장은 10배로 늘어난 것. 1970년대 이전에 가설돼 현재 남아있는 도로 교량은 전체의 2%(632개)에 불과하다.

도로 교량 가설 트렌드는 1970년대 중반을 기준해 전'후 세대로 나뉜다. 한국전쟁을 겪었던 터라 1970년대 중반까지는 적의 폭격을 받았을 때 복구하기 쉽도록 간단한 공법으로 가설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 정부는 '기념물'과 '디자인' 개념을 적용해 내구성과 미관에 신경 써서 교량을 가설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 교량은 충남 논산의 산동교(1926년 가설)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도로 교량은 인천대교(1만1천856m, 2009년 가설)다. 사장교 형식으로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길다. 인천대교보다는 짧지만 현수교 방식으로는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교량은 이순신대교(2천260m, 올 10월 개통 예정)다.

그렇다면 우리 지역의 도로 교량 역사는 어떨까?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 교량은 수성구에 있는 황금교(1969년 가설), 가장 긴 도로 교량은 북구에 있는 매천대교(1천183m)다. 경북에서 가장 오래된 도로 교량은 영덕의 오포교(1931년 가설), 가장 긴 도로 교량은 성주의 신성주대교(1천80m)다.

지역별 도로 교량 분포를 살펴보면 전국 광역시'도 중 경기도에 가장 많다. 4천242개(15.5%)다. 전국에서 수도권으로 향하는 노선이 많기 때문, 따라서 도로 점유 면적도 가장 넓다. 그런데 도로 교량 수 2위 지역은 경북이다. 3천853개(14.1%)다. 경기도에 비해 도로 노선 수는 적지만 험한 산지와 하천을 통과하는 도로 구간이 많아 교량 수도 많은 것이다.

◆우리 지역 다리 이야기

다리 수가 많은 만큼 우리 지역에는 유명한 다리도 많고, 깃든 사연도 많다.

하나는 지금은 철거된 고령교다. 대구 달성과 경북 고령을 연결했던 이 다리는 한국전쟁 때 폭파됐다. 이를 복구하는 공사를 1954년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이 이끌던 현대건설이 맡았던 것. 당시 국가가 발주한 공사 중 최대 규모였다. 하지만 정 회장은 착공기간 동안 원자재 물가가 급상승해 수주한 공사비 외에 6천500만환의 적자를 안게 됐다. 그럼에도 복구공사를 마쳤고, 이때 정부의 신용을 얻어 다른 다리 복구공사를 계속 따내며 재기할 수 있었다. 이 고비를 넘긴 현대는 이후 우리나라 거대 그룹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연을 바탕으로 고령군은 현대건설의 협조를 얻어 고령교에 '다리박물관' 건립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2010년 12월 낙동강 정비 사업으로 고령교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고령교처럼 한국전쟁 때 폭파된 다리 중 대표적인 곳이 왜관철교다. 경북 칠곡군에 있는 이 다리는 당시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미군이 폭파해 '호국의 다리'라는 별명이 붙었고,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406호로 지정돼 인도교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전쟁 발발 61주년인 지난해 6월 25일 새벽에 수해로 붕괴돼 우연의 일치라고는 믿기 힘든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함께 자아냈다. 올 4월 복구공사를 마친 왜관철교는 인근 관호산성 둘레길과 연계돼 지역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하 저지선이었던 이유로 엄숙한 사연이 담긴 다리가 많다. 하지만 구석구석 살펴보면 푸근한 부락의 온기를 실어 나르는 다리도 적잖다. 대표적인 것이 낙동강 상류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는 '육지 속 섬마을'인 경북 예천군 회룡포 마을의 '뿅뿅다리'다. 이 다리를 동네 사람들은 '아르방다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다리에 이어 붙인 구멍이 숭숭 뚫린 공사용 철판이 연상되는 뿅뿅다리가 더 유명하다. 드라마 '가을동화'와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의 촬영지로도 유명세를 얻었다. 뿅뿅다리가 생긴 것은 불과 20여 년 전이다. 그 전에는 바지를 걷고 물을 건넜다. 도로가 생겼지만 우회해 마을과 연결돼 있어 아직도 뿅뿅다리는 주민과 관광객들의 마을 직통 다리로 애용되고 있다.

가장 최근 개설된 우리 지역 명소 다리는 울릉도에 있다. 아쉽게도 한반도와 연결된 초특급 대교는 아니다. 육지와 섬이 아닌 섬과 섬을 잇는 다리다. 최근 울릉도 북동쪽에 있는 관음도와 본섬 사이에 보행용 현수교가 설치됐고, 관음도도 50년 만에 일반인에 공개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랜드마크 다리가 대세

다리는 편리한 통행을 제공하는 기본 기능에 더해 관광 명소의 기능도 '당연하게' 갖추는 추세다. 그러면서 지역마다 '랜드마크' 다리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부산의 광안리대교다. 총 공사비 7천899억원을 들여 2002년 완공했다. 인천의 인천대교도 있다. 총 공사비 1조961억원을 들여 2009년 완공했다. 이 정도 선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리 외관에 화려한 경관 조명을 입히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관련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주입시키며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전국은 물론 외국에서 보고 즐기러 오는 명소로 가꿔나가고 있다.

광안리대교는 주변 광안리 및 해운대 해수욕장과 자연스럽게 연계돼 전국구 관광 명소로 유명세를 떨치게 됐다. 또 부산시는 광안리대교의 영문 애칭을 '다이아몬드브리지'로 정해 처음부터 외국인들에게 어필하는 전략을 세웠고, 광안리 불꽃축제를 찾는 일본과 중국 관광객이 매년 수백만 명에 이른다. 인천대교도 인천국제공항이 선전하며 인천을 넘어 우리나라의 관문 랜드마크 기능을 하고 있다.

이처럼 랜드마크는 그 지역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것은 물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창출한다. 그래서 "대구는 낙동강'금호강'신천 등 하천 자원을 충분히 갖고 있으면서 랜드마크 다리 하나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느냐"는 지적도 나오는 것. 하지만 최근 명물 다리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구 동구청의 아양철교 재생 명소화 사업이다. 1936년 가설된 아양철교는 2008년 대구선 이설과 함께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그러면서 대구 관문 랜드마크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실행되지 못하고 표류했다. 그러다 최근 국내 시각디자인 분야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 시각디자인학부 백명진 교수 팀이 사업을 맡기로 한 것. 총 사업비 35억원이 들어가는 비교적 소규모 사업이지만 특이한 공법으로 만들어진 아양철교의 원형을 보전하는 것은 물론 국내에서 보기 드문 명소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이 시대 다리의 의미는?

다리는 즐거운 축제와 휴식의 장으로, 지역을 알리는 랜드마크 기능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그늘진 부분을 투영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자살다리'다.

서울 한강의 투신자살 발생 1위 다리는 마포대교다. 2010년 한 해 동안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한 1천301명 중 가장 많은 108명이 뛰어내렸고, 그 중 48명이 숨졌다. 그래서 서울시는 투신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마다 센서를 설치해 보행자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난간에 문자메시지를 표시해 보행자에게 친근하게 말을 거는 등 마포대교를 '자살방지 다리'로 꾸미겠다고 최근 밝혔다.

전문가들은 도심 속 다리가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여러 조건을 갖췄다고 분석한다. 자기 처지를 호소하길 바라는 사람들은 교통량과 유동인구가 많은 다리를 찾아 자신을 노출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교통량과 유동인구가 많다는 조건은 반대로 군중 속 고독을 느끼게 해 우울증 환자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또 자살 시도자들이 널리 알려진 자살 다리만 찾는 경향도 자살 다리 '명소'를 만들어내는 이유다.

투신자살 발생 세계 1위 다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다. 1933년에 착공, 4년 만인 1937년에 완공하며 미국 토목학회가 20세기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는 미국의 자랑인데다 세계적인 관광 명소인 금문교가 실은 세계적인 자살 명소라는 역설. 이 시대 명과 암이 함께 투영되는 곳이 바로 '다리'라는 이야기다.

황희진기자 hhj@msnet.co.kr

※사장교와 현수교

교각과 교각 사이의 길이가 1천m 이상인 경우 다리 상판을 최소 개수의 교각으로 지지하기 위해 케이블을 연결한다. 이때 주탑과 상판의 연결 방식에 따라 사장교와 현수교로 나뉜다. 사장교는 주탑과 상판을 케이블로 직접 연결하는 방식이다. 현수교는 두 개의 주탑을 케이블로 연결한 다음 케이블에서 수직으로 늘어뜨린 강선과 강판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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