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토크(88)] 김정미

입력 2012-08-16 13:59:56

밴드음악 속성 꿰뚫은 사이키델릭의 여제(女帝)

대개 음악 마니아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교조적이라는 점이다. 빠져 있는 장르에 대한 무한신뢰와 다른 장르에 대한 배타적인 성향은 일반인이 보기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이들이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예술성을 지지한다는 점에서 존재 가치는 충분하다.

또 마니아들은 과거의 음악을 발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 능한데 대중음악 담론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중고 음반(특히 LP) 유통에 관한한 큰손이 되기도 한다.

마니아들 사이에 고가로 거래되던 음반 가운데 김정미의 'NOW'가 있다. 1973년 11월 공개된 이 음반은 CD로 재발매되기 전까지 100만원이라도 사겠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고가에 거래된 아이템이었다. 음반이 주목을 받으면서 김정미라는 가수에 대한 궁금증도 이어졌는데 마니아들은 '한국 사이키델릭의 여제(女帝)'라는 칭호로 그녀를 예찬했다.

김정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신중현 사단에 발을 들인다. 이미 펄시스터즈와 김추자라는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를 배출한 신중현은 1960년대를 풍미한 사이키델릭 록을 구현할 여성 보컬리스트로 김정미를 낙점한다. 김정미는 1972년 신중현의 작품을 담은 '김정미 최신 가요집'을 공개하는데 신중현이 원하던 사이키델릭 창법에 김정미 특유의 에로틱한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주목을 받게 된다. 비록 '제2의 김추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지만 신중현이 원하는 음악적 방향을 제대로 해석했을 뿐만 아니라 보컬과 연주의 조화를 중시하는 밴드 음악의 속성까지 정확히 이해하면서 스타 탄생을 예고한다.

이후 공개된 앨범 '바람'과 'NOW'는 한국 록음악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인 창법과 연주어법을 지닌 음반으로 평가받는다. 수록곡 중 7곡이 중복되는 두 음반에서 김정미는 무감각하고 나른한 어조로 노래하면서 반복적인 밴드의 사운드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당시의 정부 검열은 '창법 저속'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김정미의 대부분 곡을 금지곡으로 분류한다. 특히 긴급조치 9호와 대마초 파동 이후 신중현이 활동정지를 당하게 되자 김정미는 더 이상 음악을 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일체의 소문 없이 대중음악계에서 사라져 버린 김정미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비교적 신뢰가 가는 이야기는 미국에서 음악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이도 정확하지는 않다.(혹시 근황을 아는 독자는 꼭 메일을 주시길 당부한다)

마니아들의 염원으로 2장의 앨범이 CD로 재발매된 후 김정미는 한국대중음악 역사에서 가장 교조적 지원군을 이끄는 여제로 등극한다. 이참에 여제 최고의 앨범 'NOW'를 오랜만에 들으며 어디가 창법 저속인지나 찾아봐야겠다. 옆에 당시 금지곡 심의위원들의 명단을 두고 말이다.

권오성 대중음악평론가 museero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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