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인물] "자자손손 항일" 대구서 순국한 박상진

입력 2012-08-13 07:02:31

"오인(吾人)은 대한독립광복을 위해 오인의 생명을 희생에 공(供)함은 물론, 오인이 일생의 목적을 달성치 못할 시는 자자손손이 계승하여 수적(讐敵) 일본을 완전 구축하고 국권을 회복할 때까지 절대 불변하고 결심 육력(戮力)할 것을 천지신명에게 서고(誓告)함." 1884년 울산에서 태어나 일제에 맞서다 1921년 순국할 때까지 독립운동가 박상진(朴尙鎭)이 지녔던 각오다.

의병장 허위의 제자였던 그는 1908년 순국한 스승의 시신을 경북 선산에 장사 지낸 뒤 1910년 나라를 잃자 판사 옷을 벗고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중국 만주를 돌며 독립의 꿈을 키우고 1912년 귀국, 대구에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란 곡물상회를 차려 군자금 마련 등 독립운동 거점으로 삼았다. 또 독립군을 양성, 민족독립을 이룰 계획으로 1915년 대구서 대한광복회를 만들었다.

이듬해 군자금 마련을 위해 권총을 만주에서 구입, 반입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친일 부호세력을 응징했고 대한광복회 조직이 탄로 나 1918년 대구법원에서 사형 선고로 4년간 옥고를 치르다 같은 혐의로 김한종(金漢鍾)과 함께 1921년 오늘 대구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돼 안타까운 생을 마쳤다. 당시 언론은 그가 교수대에서 태연하게 죽음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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