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왜 했나
개관을 앞둔 KT&G 별관 창고를 활용한 '대구문화창조발전소'가 역사성을 잃은 채 모습을 드러내 논란이 되고 있다. 벌써부터 '실패한 리모델링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8일 오후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대구문화창조발전소를 찾았다. 근대의 흔적은 벽돌로 된 외벽 뿐이었다. 내부는 깨끗한 흰색으로 평범하게 마무리했다. 내부 공간 어디에도 원래의 분위기와 근대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몇 차례 전시를 통해 전국 미술인들로부터 '야생적이고 힘있는 전시 공간'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곳이다. 하지만 이젠 그 흔적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이는 구 도심의 옛 건물과 폐쇄된 공장, 창고 등을 활용해 문화 공간, 창작 공간으로 재생하는 아트 팩토리 조성의 세계적인 흐름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리모델링 결과물이다.
◆ 하드웨어의 정체성은?
옛 도심의 낡은 건물이나 역사적 건축물을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은 도시 재생의 핵심적 대안이자 창조도시의 근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무기공장을 예술특구로 변신시킨 중국 베이징의 따산즈 798, 일본 삿포로 맥주공장을 재활용한 삿포로 팩토리, 폐쇄된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120년 역사의 낡은 방직공장을 100여 개의 창작 공간으로 조성한 독일 라이프치히의 슈피너라이, 철도역을 개조한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과자공장을 개조한 세계 최대 현대미술관인 미국의 디아 비콘 등은 구도심 활용 방안의 중요한 모델이다. 이들 건물들은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하지만 근대 산업의 흔적을 간직한 KT&G 별관 건물을 대구시는 벽돌로 된 외벽만 남기고 다 뜯어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설로 만든 것이다.
문화창조발전소를 둘러본 한 문화 관계자는 "새로 짓는 것보다 리모델링 비용이 더 들텐데, 이렇게 할 거면 차라리 새로 짓는 게 낫지 않나"고 반문했다.
대구시 김대권 문화체육국장은 "창고형 건물을 다중이용시설로 만들기 위해서는 소음방지'냉난방'전기 시설 등을 갖춰야 하므로 예전의 분위기를 살리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미술 관계자들은 냉난방과 항온항습, 전기 시설 설비가 불가능하다면 유럽 유수의 미술관은 어떻게 100년이 넘은 건물을 근대성을 간직한 리모델링에 성공했냐고 꼬집었다.
◆ 성공한 아트팩토리, 청주
국내에도 아트팩토리의 좋은 사례가 있다. 청주시는 KT&G 청주 연초제조창을 이용해 국내 최고 수준의 아트팩토리를 조성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버려져 도심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는 건물에서 공예비엔날레를 개최, 2011년 65개국 4천500여 명의 작가가 참가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건물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국내 첫 아트팩토리형 비엔날레를 통해 이 담배공장이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공간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미술전문가들은 담배공장을 비엔날레 행사장으로 활용한 것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유럽의 오르세 미술관이나 테이트모던보다 더 좋은 아트팩토리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청주는 연초제조창에 국립현대미술관 지방 분원을 유치해 설계 중이고, 나머지 공간은 공예비엔날레 상설전시장, 공연 및 예술 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결정하고 설계 마무리 단계에 있다. 설계에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근대산업 유산에 대한 역사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다.
한편 청주 역시 연초제조창의 창고 건물을 2000년 리모델링해 문화산업단지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실패한 리모델링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대구의 문화창조발전소처럼 근대적 역사의 흔적은 다 소멸되고, 현대식 시설만 남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대구문화창조발전소 연구용역진들이 청주를 방문했을 때 청주의 관계자들은 "역사성을 살리지 못한 리모델링 사례이니, 대구는 절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구는 역시 똑같은 실패의 전철을 되풀이하고 있다.
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 변광섭 기획홍보부장은 "오래된 건물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며 역사를 느끼게 하는 것이 시대의 트렌드"라면서 "역사의 때 묻은 모습을 숨기지 않고, 그것을 보며 새로운 영감을 얻으려는 것은 예술공간 뿐만 아니라 작은 커피숍들도 추구하고 있는 콘셉트"라고 말했다. 그는 "법은 중요하지만 법 테두리 안에서도 공간의 이미지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대구의 리모델링 사례는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 소프트웨어의 부재
그렇다면 문화창조발전소는 앞으로 어떻게 운영될까.
개관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도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문화계 일각에서는 "문화창조발전소의 활용 방안을 두고 미술, 공연 등 각 문화계마다 이권을 챙기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앞으로 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문화관광연구원에 대구시민회관, 오페라하우스 등 문화기관 전체에 대한 용역을 줄 예정이며, 그 결과를 보고 문화창조발전소의 운영 주체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용역 결과를 11월에 받을 예정인데, 불과 서너 달 만에 작성된 문화정책으로 대구 문화정책의 장기 비전을 추측할 수밖에 없게 됐다.
대구시는 우선 9월 말 문화창조발전소에서 진행되는 대구사진비엔날레 전시 진행을 위해 인력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문화창조발전소에 근무할 계약직 공무원 2명을 채용할 계획이지만 '민간 위탁될 경우 신분 및 임금 변동 가능'이라는 단서가 붙은 불안정한 직위다.
김대권 국장은 "우선 다른 문화기관에 대한 용역 결과가 나오면 구체적으로 역할이 정해질 것"이라면서 "2009년 용역 결과대로 실험적 예술인들이 나올 수 있도록 실험적인 공간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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