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철의 별의 별이야기] 영화 '도둑들' 금고털이 역할 김혜수

입력 2012-07-26 15:11:52

'팹시' 캐릭터 힘들어 거절…고민 거듭하다 새벽에 OK

배우 김혜수(42)의 당당함과 자신감에 반한 사람, 한 둘이 아닐 것 같다. 세월이 비켜간 듯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와 모두가 다 아는 섹시한 매력은 두말하면 잔소리.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낮은 목소리로 말할 때 또 한 번 빠져들 수밖에 없다.

최동훈 감독도 이런 김혜수의 매력에 빠져든 걸까. 최 감독은 영화 '도둑들'의 금고털이 전문 도둑 팹시는 김혜수가 아니면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최 감독이 말한 의미를 영화에서 팹시를 만났을 때 한 번 느꼈고, 현실의 김혜수를 만났을 때 또 한 번 깨달았다. 김혜수는 최 감독을 만나 그만이 뽐낼 수 있는 매력을 오롯이 전했다.

"도둑들 시나리오를 봤을 때, 가장 보고 싶은 최동훈 감독의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좀 더 버라이어티해지고, 화려해졌으며, 관객들에게 친절하기도 했죠. 서비스가 많았다고 할까요?"

최 감독과 '타짜'에서 이미 호흡을 맞췄던 김혜수는 이번 작품에서 달라진 건 감독의 연출 폭과 깊이였다고 했다. 특히 팹시는 기존의 최 감독이 만들어낸 캐릭터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최 감독이 변화하고 확장하고 싶은 지점을 만들어낸 캐릭터랄까?

전지현에게만 스포트라이트? 노력만큼 거둔 것

이 때문에 김혜수는 고민을 했다. "최동훈과 김혜수가 타짜 이후 다시 만나 새로움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이 있었는데, 시나리오를 보니 다른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최동훈의 새로운 지점과 맞닿아 있는 캐릭터였는데 '내가 이 인물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나?'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제로(0)로 확 떨어졌어요. 결국 쉽게 드러나지 않는 에너지를 끝까지 유지하는 게 힘들 것 같아 예고도 없이 못하겠다고 했죠. 감독님이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준비되지 않은 이별 통보를 받은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이 역할은 내게 아니야'하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고 다시 본 시나리오는 김혜수의 생각을 변화시켰다. "'이 역할은 어려운 게 맞아. 하는 동안 힘들겠지. 하지만 가능성은 있어!'라는 생각이 들었고, 새벽에 '감독님 팹시 제가 해야겠어요'라는 문자를 보냈죠."

김혜수는 자신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다들 용기를 내고 이 영화에 참여했을 거라고 단언했다. 김윤석·전지현·이정재·김해숙·김수현·오달수·중국배우 임달화 등 이름만 들어도 대단한 배우들. 이들과 연기를 하며 느낀 건 "적당한 욕심을 세울 줄은 알지만, 불필요한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즐거운 촬영이 또 있었을까. 김혜수는 배우들의 연기를 빤히 쳐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촬영장을 떠오르게 만드는 기억을 전했다.

"전지현의 청량감, 김수현의 신선함 등을 눈앞에서 바로 봤어요. 김윤석'임달화'김해숙 선배의 연기를 본다는 것도 대단했죠. 영화 속 캐릭터를 보기도 하고, 촬영이 끝나면 또 현실의 다른 매력도 관찰할 수 있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너무 특별한 작업이었죠."(웃음)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줄타기 전문 도둑 예니콜을 연기한 전지현의 통통 튀는 매력과 작전설계자 마카오박을 연기한 김윤석이 극 후반부 발산하는 와이어액션이 유독 칭찬을 받는다. 극중 전지현과 미모 대결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김혜수는 후배에게 향하는 스포트라이트가 약간은 서운하지는 않았을까.

"배우는 일희일비할 수 없어요. 솔직히 중요하지 않죠.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은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냈느냐는 거예요. 그 과정을 기쁜 마음으로 배우고 느끼는 것이죠. 관객의 평가는 매우 정확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지현 씨가 엄청난 준비를 했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어요. 지현 씨도 이 작품을 알아보고 참여한 것이고요."(웃음)

최 감독은 전지현'김윤석뿐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에 각자의 매력을 발산시키게 했다. 최근 인터뷰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없는 캐릭터인 팹시가 영화 속에서 자신이 쓴 시나리오보다 더 잘 나왔다"고 무척 만족해 했다.

김혜수는 이런 환경과 상황, 캐릭터들을 만들어준 최 감독을 향한 애정이 넘치는 듯 했다. "관객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온 마음을 빼앗길 캐릭터를 만든 게 너무 좋다"고 감탄했다. "최 감독님은 혼자 6시간을 떠들어도 지루하거나 질리지 않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잡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말들이기도 하죠. 일할 때 감독으로서 가장 멋져 보여요. 배우들은 주관적이라 모호한 지점이 있는데 감독님은 명쾌하고 정확하시죠."

아역부터 오랜 세월 연예계에 몸담은 그도 개봉을 앞두고 긴장을 할까. 그는 "가혹한 평가를 받은 작품은 나중에 반드시 참고를 한다"면서도 "영화 촬영을 준비하고 호흡을 맞춰 연기를 하면 그게 다일뿐"이라고 했다. 책임감은 느끼지만 그렇다고 흥행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란다. 물론, 흥행이 잘되고 좋은 평가를 받으면 "보너스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웃었다.

사랑과 이해는 다른 차원…난 독신주의자 아냐

동료 유해진과 결별하고 이후 사랑하는 사람을 공개하지 않은 김혜수. 독신주의자는 아니라는 그는 또 다른 연인이 있는지는 알리지 않았다. 다만 "일과 사랑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최동훈 감독을 향한 애정이 남달라 보여 비록 결혼은 했지만 최 감독 같은 스타일은 어떤지를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전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일을 할 때 가장 멋졌으면 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멋지겠죠?(웃음)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쉐어(공유)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해의 폭이 애정의 척도가 되면 다른 것으로도 관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극중 톡 쏘는 매력을 가진 팹시처럼 톡 쏘는 애정관이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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