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있어. 자주 올게. 미안하다. 내 딸…."
어린 소녀를 떠나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이웃 아저씨에게 무참히 살해돼 야산에 버려졌던 한아름(10·경남 통영)양의 시신은 25일 오후 한줌의 재로 변해 고향인 영덕군에 흩뿌려졌다.
한 양의 장례식은 이날 오전 경남 통영시 소호동의 적십자병원에서 진행됐다. 지난 16일 이웃 아저씨 김모(45)씨에게 성폭행 및 살해당한 후 9일만에 치러진 장례식이었다. 시신이 발견된 것은 사건 발생 6일 뒤인 22일이지만 부검 등 사건 수사로 인해 장례가 하루 늦춰졌다. 어린 딸, 어린 동생의 시신이 부검으로 또 다시 짖이겨질 때 유족들의 마음도 다시 한번 찢겨져 나갔다.
한양의 고모(54)는 "이렇게 떠나 보낸 것도 아픈데, 시신 하나 온전히 간수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며 가슴을 두드렸다.
화장이 끝나고 한 양이 다니던 초등학교를 영정과 함께 돌아본 유족들은 오후 2시쯤 서둘러 영덕으로 출발했다. 평소 고향인 영덕군 병곡면 영동리에 자주 가고 싶어했던 한 양의 소원에 따라 유골만이라도 이곳에 안착하기 위해서였다. 한 양은 4살 때까지 이곳에 살며 인근 고래불해수욕장과 칠보산 기슭을 마음껏 뛰놀며 자랐다. 한 양에게는 그 시절이 자신에게 가장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통영으로 이사한 후에도 입버릇처럼 "영덕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오후 7시 30분쯤 고향에 도착한 유족들은 인근 칠보산 기슭의 한 시냇물에 유골을 흘려보냈다. 원래는 한 양이 가장 좋아했던 산 중턱에 뿌릴 계획이었으나 살해 당시 야산에서 당했을 끔찍한 일을 생각해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별을 준비하기에는 유골이 너무 쉽게 흘러갔다. 겨우 10분 남짓한 시간에 유골함은 모두 비워졌다. 유족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포항 무량사(포항시 북구 흥해읍)로 향했다. 한 양의 5촌 당숙, 법은스님(속명 한태웅·63)이 주지로 있는 이곳 역시 한 양이 영덕에 살 때 2~3달마다 한번씩 들러 뛰놀던 곳이다.
법은스님은 "(아름이는) 아주 활달한 아이였다. 지금도 대웅전 앞마당을 누비며 고사리 손으로 하나하나 더듬던 손길이 다 생각난다"고 했다.
이날 오빠(20)의 품에 안겨 무량사에 도착한 한 양의 영정은 다음달 19일까지 49제가 진행되며 매년 기일마다 제가 치러질 예정이다. 포항사암연합회의 스님들이 49제에 함께 참여해 한양의 극락왕생을 빌기로 약속했다. 49제의 첫 의식으로 오후 8시30분쯤 시작된 입제는 절 몇번과 경전 암송 등이 치러지고는 30분만에 끝났다.
"잘 있어. 자주 올게"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네던 아버지 한광운(58) 씨도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한 씨는 "내 딸의 사연이 널리 알려져 나처럼 또 다시 마음 찢어지는 부모가 없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10살배기 어린아이의 제사인만큼 제수음식 외에 한편에 놓인 과자며 사탕 등이 안쓰러웠다.
포항·신동우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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