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홀로 방광암과 싸우는 박민수씨

입력 2012-07-25 07:37:49

쪽방촌 벗어나면 딸이 돌아올까요 암이 도망갈까요

방광암 환자 박민수 씨는 집 밖에서 오지 않을 손님을 기다린다. 박 씨는
방광암 환자 박민수 씨는 집 밖에서 오지 않을 손님을 기다린다. 박 씨는 "집 안에 가만히 가만히 누워 있으면 죽음이 더 가까이 오는 것 같다. 어서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딸이 셋이나 있는 '딸부자'이지만 박민수(가명'58) 씨는 매일 외로움과 사투를 벌인다. 6.6㎡(2평) 남짓한 그의 쪽방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다. 여름에는 찌는 듯한 무더위, 겨울에는 칼바람이 그의 동지가 될 뿐이다. 그는 딸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개를 숙인다. 2년 전 연락이 끊긴 큰딸과 타지에서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고생하는 둘째 딸,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는 막내딸까지. 이제는 암세포까지 그를 괴롭힌다. 살아야 할 이유는 많은데 붙잡아야 할 희망은 점점 희미해진다.

◆와르르 무너진 인생

23일 오후 대구 서구 원대동의 한 쪽방촌. 좁은 골목길 녹슨 대문을 밀고 들어가자 박 씨의 집이 나타났다. 이날 대구 낮 최고기온이 34℃까지 오를 만큼 무더웠지만 바닥에는 두툼한 겨울 이불이 깔려 있었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준비할 여유조차 그에겐 없었다. 그래도 이 좁은 방에서 박 씨는 막내딸 수빈이(가명'16)와 함께 지난해를 버텼다. 박 씨는 "방도 좁고 한창 사춘기인 딸을 여기서 키울 수 없어 4년 전 이혼한 애 엄마집에서 당분간 지내도록 하고 있다"며 허공을 바라봤다.

그도 한때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박 씨 명의로 된 112㎡(34평) 빌라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다. 그는 콩국수집을 하는 '사장님'이었다. 사업을 확장하면서 무리하게 투자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다른 음식점 사업으로 업종을 전환하면서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경기 불황으로 식당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안 돼 문을 닫아야 했다. 2억원 가까이 빚을 지면서 은행에 넘어갔고 결국 파산 신청까지 해야 했다.

박 씨는 인생에 두 번째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 돈이 없으면 건강한 몸을 밑천으로 재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공사 현장에서 페인트칠하는 일을 찾아다니며 일당 8만원을 받았다. 일이 많을 때 20일을 꼬박 일하면 160만원이 손에 들어왔다. 이 돈을 차곡차곡 모아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준비했다. 하지만 5년 전 택시를 타고 가다가 뒤에서 차가 들이받는 사고를 당하면서 인생에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당시에 목이 뻐근할 뿐 외상이 없어 70만원만 받고 합의했지만 3년 뒤 목과 허리에 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건강한 몸밖에 기댈 것이 없었던 박 씨는 마지막 희망마저 잃었다. 경제적인 문제로 종종 다퉜던 아내와 헤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말없이 사라진 큰딸

'근로능력 없음.' 이혼 뒤 그는 주민센터로 찾아가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다.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정부 지원금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 서글펐지만 자녀들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첫째 딸 수진(가명'30) 씨가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친구와 결혼 이야기가 오가던 시점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와 이유없이 실소를 터뜨렸고 아기 울음소리를 내기도 했다. 박 씨는 딴사람이 된 큰딸을 데리고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다.

"당신 딸한테 '애기신'이 오셨어. 신내림 안 받으려면 3천만원 내고 큰 굿을 해야 해."

박 씨는 "방세가 몇 개월째 밀려 쫓겨날 처지에 그런 큰돈이 어디 있었겠냐"며 "그래서 귀신을 쫓아달라고 아는 점집을 찾아가 100만원 주고 굿을 했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2년 전 큰딸은 소리없이 집을 떠났다. 2010년 겨울 "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온다"고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던 수진 씨는 여태 연락이 없다.

밀린 방세 때문에 방 두 개짜리 월셋집에서 쫓겨난 뒤 박 씨는 쪽방촌으로 이사를 했다. 하지만 지난해 이곳에서 막내 수빈이는 이웃 아저씨에게 몹쓸 일을 당했다. 박 씨의 신고로 피의자는 처벌을 받았지만 중학교 3학년이었던 수빈이는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 이혼한 아내 집에 수빈이를 보내야 했던 것도 아이에게 끔찍한 상처가 되살아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박 씨는 "돈이 생기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이 동네를 떠나는 것"이라며 "그래야 수빈이가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는 몸이 망가져

더 잃을 것이 없는데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지난해 말부터 혈뇨가 나와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올해 5월 방광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곧장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도 1주일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암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구미에서 사는 둘째 딸(29)을 찾아갔다. 2년 전 결혼해 힘들게 사는 딸을 찾아가 암에 걸렸다고, 치료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어깨는 한없이 작아졌다. 퀵서비스 기사인 사위는 박 씨에게 현금 50만원을 건넸다. 월급 3분의 1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다.

박 씨가 가장 슬플 때는 돈이 없어 막내 수빈이의 꿈을 후원하지 못할 때다. 수빈이는 '네일 아티스트'가 꿈이다. 네일아트를 배우려면 3개월 과정에 100만원이 필요한데 그에겐 이만한 돈이 없다. 이웃 주민에게 "매달 10만원씩 할부로 갚을 테니 당신 신용카드로 학원비를 결제해 달라"고 부탁해 수빈이는 지금 학원을 다니고 있다. 박 씨는 "학원에서 네일아트 실기시험을 봤는데 수빈이가 100점을 받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인터뷰 내내 그늘이 져 있던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웃음꽃이 피어났다.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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