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의 끝-道界마을을 찾아서] <4> 영주 소백산 죽령

"소백산은 우리 산" 영주·단양, 가깝고도 먼 이웃

백두대간 소백산을 사이에 두고 협력과 상생'갈등과 시비가 끊이지 않는 곳, 고구려'신라'백제로 나뉘어져 격전을 벌였던 곳이 바로 가깝고도 먼 이웃인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을 가르는 죽령이다. 단종과 금성대군의 애환이 서려 있고, 소백산을 서로 자기내 산이라고 우기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 두 자치단체는 접경지 마을협력회와 중부내륙행정협력회, 중부내륙중심권 의정협력회 등을 만들어 인적'물적교류를 통해 상생과 협력을 모색해 오고 있지만, 도 접경지 경계인 소백산을 두고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영욕의 역사 품은 죽령

죽령(竹嶺)길에는 오랜 세월 영주와 단양을 오가는 사람들의 희노애락이 전해지고 있다.

죽령(해발 689m)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에서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넘어가는 험준한 고갯길이다. 1천800여 년 동안 문경새재와 영동 추풍령과 함께 교통의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바람과 소낙비, 도둑이 거세다고 해 '삼재령'이라고도 했고, 풍치가 아름답고 길손이 반갑고 주막 인심이 좋다고 해 '삼풍'이라고도 불렸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동쪽으로는 영주시, 서쪽으로는 단양군이 자리하고 있다. 남쪽으로는 소백산 일대 첩첩산중이 펼쳐지고 북쪽으로는 연화봉과 비로봉, 국망봉이 버티고 서 있다, 산 봉우리를 따라 펼쳐져 있는 능선이 바로 도 경계다.

신라 때 죽죽(竹竹)이란 사람이 닦았다고 해 죽령이란 이름을 얻었다는 이 길은 한때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가 되기도 했다. 죽령은 예부터 한 국가나 한 지역의 경계를 이루는 중요한 장소이며 역사와 문화권을 다르게 발전시켜온 분기점이다. 사람이 서로 만나고 헤어질 때 정을 나누었던 장소이자, 오고 가는 길손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땀을 씻고 쉬어가던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낙동강과 남한강의 경계이자 영남과 수도권의 경계이기도 하다.

죽령은 숱한 역사를 품고 있다. 고구려'신라'백제 등 삼국의 격전지였다. 고구려의 전성기인 광개토대왕 때 죽령은 고구려의 국경선이었다. 고구려 군사들이 넘어 다녔고, 잃었던 땅을 되찾은 신라군과 견훤을 물리친 고려의 왕건, 나라를 몽땅 바친 신라 경순왕도 눈물을 흘리며 죽령을 넘어 개성으로 갔다. 신라의 진흥왕, 고구려 온달장군, 신라 김유신 장군 등이 죽령을 넘나들었다. 죽령은 역사의 산 증인이며 경상도와 충청도 사람들의 마음의 경계이기도 하다.

죽령을 오르는 길엔 소백산이 품은 천년고찰 희방사와 희방폭포, 청령대가 있다. 희방사는 643년 두운 조사가 소백산 남쪽 기슭 해발 850m에 창건한 사찰이다. 절 입구에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연림이 빽빽하며, 절 바로 밑에 내륙지방 최대 폭포인 높이 28m의 희방폭포가 있다. 폭포가 떨어지는 계곡에는 커다란 바윗덩어리와 숲이 펼쳐진다. 경내에는 희방사 동종과 월인석보 책판이 보존돼 있다. 죽령을 넘나들던 경상도 사람과 충청도 사람들은 한 번쯤 도경계인 이곳에 들러 저마다의 소원을 빌었다.

박성홍(57) 영주 소수박물관장은 "죽령을 품은 소백산은 영남의 진산이다. 산도 얼굴이 있고 뒤통수가 있듯 소백산의 역사와 문화는 영남의 문화유산이다"며 "소백산은 경북과 충북을 갈라 놓은 행정구역 상의 경계지만, 인적 물적교류를 잇는 교역로이기도 하다"고 했다.

◆상생과 협력 모색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은 1998년부터 교류협력회를 만들어 지역 간 화합과 친목을 도모해왔다. 이를 통해 소백산 철쭉제 공동 개최, 양 도시 간 농특산물 판매교류전, 면민화합대회, 행정교류회, 소백'태백권 종합관광지도 제작(2000년 10월), 소백산 정상 표지석 정지사업 등을 펼치며 친분을 과시했다.

영주시의회도 2007년 단양군의회와 중부내륙중심권 의정협력회를 발족시킨 뒤 중부내륙권에 대한 국가균형발전종합계획 반영 촉구, 충청고속도로 건설, 국립공원 구역조정 건의, 수도권규제완화 정책 철회 촉구 성명, 수질오염 총량제 건의, 마구령 터널 개설 촉구 등을 통해 상생과 협력을 펼쳐왔다.

최근에는 양 지역 간 중부내륙권행정협력회를 통해 안드로이드 마켓에 관광 애플리케이션을 개설하고, 온'오프라인이 통합된 관광가이드북도 발간했다.

김재선 영주시 관광사업과장은 "관광전문 애플리케이션과 QR관광가이드북 개발은 기존 관광개발에서 분리돼 있던 온'오프라인의 관광콘텐츠를 하나로 통합하고, 이용자 중심의 서비스 환경을 최적화한 것"이라며 "이를 통해 잠재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 도시간 협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백산은 우리산

하지만 양 지역은 죽령을 품은 소백산을 두고는 한 치의 양보도 없다. 철쭉이 필 무렵이면 양 지역이 각각 같은 장소에서 경쟁적으로 소백산 철쭉제를 연다.

관광객들이 혼선을 빚고 말썽이 일자, 양 지역은 1999년부터 격년제로 돌아가면서 '소백산철쭉제'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양 지역은 2006년 이 같은 방침을 다시 바꿔 매년 각각 소백산 철쭉제를 열고 있다. 영주시는 시와 문화원이, 단양군은 충북과 단양군이 공동 주관해 철쭉제를 열고 있다,

철쭉제 행사가 열리는 소백산 연화봉 정상에는 양 지자체의 경쟁적인 소백산 사랑을 보여주는 정상 표지석이 있다. 서쪽에는 단양군이 새겨놓은 '제5회 소백산철쭉제를 기념하며'''.'란 글씨가, 동쪽에는 영주시가 새긴 '소백산철쭉제 기념'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단양문화원은 올 6월 소백산철쭉제 30주년을 기념하는 책자를 발간했다.

소백산국립공원 김진태 탐방시설과장은 "영주시와 단양군이 소백산철쭉제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갈등은 철쭉제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영주시와 단양군이 '소백산'이란 지명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영주시가 2011년 단산면 주민들이 제출한 '면 명칭변경 청원'을 받아들여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이름을 바꾸는 '읍'면'동 명칭과 구역에 관한 조례개정안'을 마련해 입법예고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단양군과 군의회는 "소백산은 특정 지역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며 단양군과 단양문화원, 충북 시'군의회 의장단협의회, 이장협의회, 새마을지회, 8개 읍'면 주민 7천300여 명 등의 서명부를 작성, 영주시장과 시의회의장 앞으로 발송한 뒤 영주시청과 시의회 앞에서 1인시위까지 벌였다. 행정안전부까지 나서 영주시에 '중앙분쟁조정심의위원회의 조정결정이 나올 때까지 면 명칭 변경을 보류해 달라'는 권고 공문을 보내 중재에 나섰지만, 쉽게 타협점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영주시의회는 올 2월 27일 충북 단양군의 반대 속에 영주시 '단산면'을 '소백산면'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개정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또 사업비 1억원을 확보해 도로 표지판과 입간판 정비에 나섰다. 그러나 중앙분쟁조정위원회는 명칭 변경 사용을 보름 앞둔 6월 14일 '소백산면 명칭 불가'로 단양군의 손을 들어줬다. 영주시는 다시 헌법재판소에 이의 제기를 신청했다.

안상모 영주시 자치행정담당은 "행안부의 조정 자체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헌법재판소에 직무이행명령에 대한 이의 본안소송과 직무이행 명령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며 "조정결정은 법적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영주'마경대기자 kdma@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