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난 통화를 하며"사랑해"라는 말을 자주한다. 진지한 톤의 사랑 고백은 아니지만 애교 섞인 목소리로 "사랑해 엄마", "사랑해 딸" 이라고 말한다. 주변에는 "어떻게 서로 사랑한다고 편하게 말하냐"며 신기해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애정 표현에 익숙한 젊은 부모들과 달리 우리 부모님 세대와 애정표현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처음부터 애정표현이 편했던것은 아니다. 사춘기 시절에는 마음의 문에 너무나 큰 자물쇠를 달아놓아 대화도 적었고, 항상 나만의 공간 안에서 가족의 침입(?)을 단단히 막았다. 일, 학교 등으로 너무나도 바빴던 그때, 대화의 문은 생각보다 오래 닫혀있었다.
6~7년전 , 매미가 귓속을 시끄럽게 만들던 여름이었다. 대구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스무살의 자유에 빠져 정신없이 지내던 나는 주말에만 가끔 집에 갔다. 나른한 주말 오후, 어머니와 조용히 점심을 먹고 TV에 빠졌다. 드라마 소리와 설거지하는 물소리만이 거실을 메우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TV를 보다 다정하게 애정표현을 하는 드라마 속 모녀가 보기 좋게 느껴졌다. 그 순간 '친구같은 모녀, 참 보기가 좋구나. 나도 엄마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줘야지' 생각이 들었다.
난 설거지를 하고 계시던 어머니의 등 뒤에서 느닷없이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색했던 시간이었다. 대화의 문을 닫은 후 어머니와 첫 포옹. 어머니는 순간 놀랐는지 잠시 움찔했다. 그리곤 아무말 없이 설거지하던 손을 멈췄다. 막상 어머니를 안고 떨리는 마음으로 용기를 냈다. 난 나보다 작고 가녀린 어머니를 안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엄마…." 하지만 다음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예상치못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기 때문이다. "사랑해요"라고 말하려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의 눈물들이 폭포처럼 흘렀다. 이유없이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렇게 어머니가 내 앞에 있다는게 너무 감사했다. 단단하게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탓에 지금껏 오해하고 느끼지 못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내 마음 속으로 그냥 들어온듯 했다. 이대로 입을 열었다가는 울음 소리마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난 어머니를 더 꽉 끌어안았다. 어머니는 "왜 그러냐"는 말도 없이 그저 가만히 계셨다. 그리고는 다시 설거지를 시작했다. 작은 어깨를 떨면서. 어머니도 울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아셨던 것 같다. 열 달을 품었고 스무해를 안고 키운 분신같은 딸의 마음을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 해 조용한 여름 오후, 매미는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물 흐르는 소리, 드라마 소리와 함께 그 여름의 오후 햇살은 모녀의 눈물소리를 감싸고 모녀의 마음을 비추고 있었다.
김 하 나 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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