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영원한 불가사의인 '사랑'과 '죽음'이라는 이름 덕분에 생명을 이어왔을꼬? 곁에 있을 땐 보이지 않다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절절하게 보이는 사랑이라는 놈. 모르기에 두렵고, 안다고 하여도 어쩔 도리가 없는 죽음의 그림자. 아예 눈에서 사라지지도 당최 손에 잡히지도 않는, 끝끝내 마르지도 채워지지도 않는 샘물이자 갈증인 신기루처럼 말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2010)는 두 쌍의 황혼 남녀가 사랑과 죽음을 씨줄 날줄로 엮어내는 순정만화다. 버럭버럭 만석 영감과 마냥 다소곳한 이뿐 할멈은 이제 막 풋사랑을 시작하려고 하고, 곰상곰상 군봉 영감과 마냥 꿈만 꾸는 순이 할멈은 조금씩 묵은 사랑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당신은 혼자서는 아무 데도 가지 못하는 겁쟁이잖아. 그러니 내 손 놓치지 말고 꼭 잡고서 함께 가는 거야." 불치의 병마에 고통스러워하는 아내와 동반자살 여행을 준비하면서 일러주는 군봉 영감님의 목소리다. 도저히 할멈 없이 혼자서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진작 엄살떨던 속내이기도 하다. "언제든 당신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견뎌낼 자신이 없어요. 당신이 지어주신 예쁜 이름과 고운 추억이 아직 살아있는 지금 떠나겠어요."
군봉 부부 빈소에서 허청허청 나오는 길목, 이뿐 할멈의 울먹이는 목소리다. 버럭 고함도 질러보지만, 혹시라도 자기가 먼저 떠난 뒤 속절없이 허물어질 만석 영감을 위한 그 속마음이 가만히 전해온다. 그렇듯 해가 지고 달 뜨고, 비 그친 뒤 바람 부는 일처럼 모든 사소한 풍경들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피어난다. 죽음의 두터운 그림자마저 차마 어쩌지 못하는 환한 미소로 하늘을 날아서 떠나간다. 가서, 참 아름다운 세상이었다고 이야기하였으리라.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이문재의 '농담' 전문)
어제로 세상이 온통 끝장나버리기라도 한 양 주저앉거나, 내일 당장 종말이라도 닥칠 것처럼 동동걸음칠 일이 아니다. 언젠가 사랑을 갈라놓을 죽음 앞에서 미리부터 고개 숙여 눈물 훔칠 일도 없다. 사소한 풍경이나 설익은 음식이라도 함께 나누면서, 오늘을 오늘로서 사랑하며 살아갈 일이다. 죽도록 뜨겁게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그냥 사랑하다가 환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퍽 아름다우리라.
송광익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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