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경의 추억… 정부 한때 허용방안 검토, 뜨거워지는 찬반 주장

입력 2012-07-21 08:00:00

오징어 등 씨 말리는 거대 포식자, 한 해 먹어치우는 수산물 4천억원

포경이 금지된 1986년까지 울산 장생포에서 포경선 선장을 지낸 김정환(63) 씨. 지금은 고향인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으로 돌아와 연안통발어선을 몰고 있다.
포경이 금지된 1986년까지 울산 장생포에서 포경선 선장을 지낸 김정환(63) 씨. 지금은 고향인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으로 돌아와 연안통발어선을 몰고 있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주민센터 앞마당에 설치된 옛 포경선. 선수에 놓인 망루에 올라가 고래를 발견하면 총을 쏴 잡았다고 한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주민센터 앞마당에 설치된 옛 포경선. 선수에 놓인 망루에 올라가 고래를 발견하면 총을 쏴 잡았다고 한다.

"고래는 영물이지. 바다에서 그만한 보물도 없을 거야."

김정환(63'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씨에게 고래는 옛날 부유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스무 살 시절부터 구룡포에서 포경선을 탔던 김 씨는 3년 후 울산 장생포로 옮겨가 1986년 포경이 금지된 시기까지 선장을 마지막으로 17년간의 고래잡이 생활을 마쳤다. 그 당시 김 씨는 서해와 독도, 대마도 인근을 다니며 밍크고래나 혹등고래 등을 잡아 올렸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귀신고래도 당시에는 종종 포획되고는 했다. 포경선원들이 말하는 돌고래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그것이 아니라 주로 혹등고래나 귀신고래를 말한다. 등에 따개비가 돌처럼 붙어 있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정작 돌고래는 등이 굽었다 해서 '곱시기'라 부른다. 곱시기도 생긴 모습에 따라 참곱시기, 문디곱시기 등 다양한 이름이 있다.

고래는 어군탐지기에 잘 잡히지 않아 보통 망대에 올라 육안으로 찾는다. 잘 발견하기 어렵지만 일단 한 마리를 잡으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포경작업이 시작된다. 고래는 가족애나 동료애가 무척 깊어 한 마리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 다른 동료들이 찾아와 자리를 잘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김 씨는 "나도 과거 숱한 고래를 잡았지만 따뜻한 모성애 등을 보면 작살 총을 쏘기가 머뭇거려졌다. 지금은 마릿수도 많이 줄어들어 고래를 잡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온 바다에 돌고래가 늘어나면서 먹잇감인 오징어 등의 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어획자원 보호를 위해서 돌고래만 지정해 잡도록 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징어와 청어 먹는 포식자, 돌고래

최근 정부가 27년 만에 고래잡이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찬반논란이 뜨거워졌다. '어업 피해를 막기 위해 잡아야 한다'는 입장과 '안 그래도 불법 포획이 많은데 더 잡으면 안 된다' 등의 입장 차가 팽팽하다. 정부는 결국 국내의 일부 부정적 여론과 반(反)포경 국가들과의 외교적 마찰 가능성을 고려해 고래의 '비살상 연구'만 허용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했다.

포경 허용을 주장하는 쪽은 '고래가 오징어와 청어 등을 마구 잡아먹어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이달 10일 포항수협과 구룡포수협 등 지역 10개 수협이 발표한 성명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근해에는 1986년 상업적 포경을 금지한 뒤 8만여 마리의 고래가 서식하고 있다. 이들이 먹어 치우는 양은 수산물의 연간 생산량 123만t 가운데 약 12%(4만6천t)며 금액으로 추정하면 4천380억원 상당에 달한다.

특히 돌고래는 몸집도 작고 영리해 어업에 더 큰 피해를 준다. 그물을 넘어들어가 물고기를 모두 잡아먹거나 불빛을 보고 모여든 오징어를 먹기 위해 어선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구룡포선주협회 최병철 회장은 "돌고래가 붙은 날은 아예 조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다. 오징어가 잔뜩 모여들다가도 돌고래떼만 나타나면 흩어지기 바쁘다"며 "고래를 잡아 돈을 벌겠다는 목적이 아니다. 지금 바다에 나가보면 수천 마리의 돌고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점점 힘들어지는 어촌 경제를 지키기 위해 최소한 돌고래만이라도 잡을 수 있도록 어업인들의 생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 포획은 환경생태계 파괴

환경단체 등은 "이미 불법 포획이 자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포경 허용은 조그만 이득을 위해 환경 생태계 자체를 망치는 일"이라며 반발이 거세다.

포항시와 울산시에 따르면 현재 고래고기 식당은 포항에 8곳(구룡포 2'시내 3'죽도시장 3), 울산에 75곳(장생포지역 55'시내지역 20)이 있다. 한 식당이 한 해 동안 유통시키는 양은 대략 7마리 정도로 추정된다. 그러나 지난해 유통증명서를 가지고 정식 판매된 고래는 519마리(밍크고래 62'돌고래류 457)에 불과하다. 나머지 모자라는 양은 불법 포획 등에 의해 공급된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국제포경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전 세계 불법 고래잡이 총 23건 중 21건이 발생해 불법 포경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경북 동해안에서도 지난해 12건(25마리)의 고래 불법 포획'유통행위가 포항해양경찰서에 의해 적발돼 57명이 사법처리를 받았다.

환경운동연합 최예용 부위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살아있는 고래가 그물에 걸리면 죽을 때까지 일부러 기다린다. 이것을 불법 포획이 아닌 혼획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과학적 포경 허용은 불법 포획을 양성화시켜주는 것일 뿐"이라며 "현 어업의 어려움은 고래의 잘못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고기를 잡아들이고 바다를 오염시킨 인간의 탓이다. 미미할 정도의 이득을 위해 고래를 잡을 것이 아니라 외국의 사례처럼 고래를 관광자원화해 어촌마을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항'신동우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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