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두근 반 하더니 이내 쿵쾅거리고, 얼굴은 금세 상기됐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이렇겠다, 저렇겠다'라며 갖가지 생각을 떠올렸지만, 막상 그 앞에 서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할 말을 잃었다. 압도되었다고나 할까.
첫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아내가 들으면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아내를 만났을 때보다 더 떨리고 흥분됐다. 지난달 터키 '아스펜도스 국제오페라 & 발레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아스펜도스 야외 원형극장에 처음 섰을 때 느꼈던 감동이다. 2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세계 최고의 음악축제가 펼쳐지는 그 무대에 서는 감격이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릴 정도다.
6월 30일, 터키 아스펜도스 국제오페라 & 발레페스티벌의 초청으로 아스펜도스 야외 원형극장에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성황리에 공연했다. 터키 측으로부터 항공료, 공연료, 체재비 등의 일체 비용을 제공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대구가 제작한 무대와 의상까지 그대로 수출한 역사적인 공연이었다. 게다가 우리의 제작 실력을 높이 평가해, 자국 내 순회공연까지 진행하겠다며 제작에 참여해 달라는 요청까지 있었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축제가 '대구 오페라의 역량과 저력'을 인정한 뜻 깊은 공연이었다.
대구시립오페라단의 예술감독직을 처음 맡았던 6년 전, 그때는 이런 성과를 기대하지 못했다. 세계 무대를 누비며 공연하는 일은 막연한 소망이었을 뿐이다.
그러던 2010년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처음으로 해외 진출 공연을 가졌다. 장소는 5년 만에 오페라 공연을 처음 무대에 올린다는 문화의 불모지인 중국의 항주. 첫 해외 공연이라 기대감과 설렘이 가득했다. 그런데 공연 첫날 무대 오픈 시간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관객 수는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때의 절망감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우리 공연단은 출연진이 관객보다 많을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자고,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흔들리지 말자고 서로를 응원을 해야 했다.
이런 결심을 하고 난 후, 공연이 시작되기 20분 전이 되자 기적이 일어났다. 어디에 숨어 있었던지 관객들이 물밀듯 밀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준비해 간 홍보물은 동이 나고 이틀 동안 2천여 명의 관객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역사적인 기록을 장식한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최초 해외 공연은 이렇게 모골이 송연함으로 시작됐다.
다음 해는 독일의 칼스루에국립극장에서 '나비부인'을 공연했다. 오페라 공연에 대해 엄격한 반응을 보내기로 유명한 유럽인들 앞에서의 공연이어서 꽤 많이 긴장했었는데, 몇 십 번이나 브라보 커튼콜 박수를 받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올해는 터키 아스펜도스 무대. 지난 두 번의 경험으로 조금의(?) 자신감을 얻고 그토록 기다렸던 터키 현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 공연단을 가장 먼저 반겨주었던 것은 40℃를 웃도는 더위였다. 이번엔 날씨와 싸우는 게 관건이었다. 힘들긴 하지만 세계적인 무대에 초청받았다는 의미가 컸기에 하루하루 숨 고르는 일조차 줄여가며 연습에 몰두했다. 공연 당일, 여름 무대에서 겨울 의상을 입고 땀이 온몸을 흥건히 적셔도, 마치 시원하고 가벼운 여름옷을 입은 듯 성악가들은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공연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런 가수들의 열정이 너무나 큰 감동이었다. 현지 스태프들도 한국의 성악가들의 열성과 실력, 제작 기술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었다. 전 세계 오페라 애호가들이 보내주는 환호와 박수는 말할 것도 없었다.
6년 전 그때, 당장 눈에 보이는 가능성은 없었다. 그래도 지역 음악인들과 함께 고민하고 애정을 쏟고 마음을 나누며 희망과 열정의 씨앗을 품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해외 진출의 쾌거를 이루었고, 감격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게 많겠지만, 대구 오페라가 유럽 무대를 장악할 꿈 같은 미래를 미리 그려본다. 이제 머지않아 우리 대구 오페라가 한국을 대표해 세계적인 오페라극장인 라 스칼라, 메트로폴리탄 무대에 서는 그날이 꼭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꿈은 더 많은 꿈을 꾸게 한다.
김성빈/대구국제오페라축제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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