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1-어머니표 삼계탕
칠월이 오는 길목에 좀 덥다 느낄 때면 아버님의 생신이다. 우리 세 동서는 장소를 어디로 정할 것인지 무슨 음식을 먹을 것인지 모두 참석할 수 있는 일요일을 택해 생신을 준비한다. 올해는 모두가 허락되는 셋째 일요일 아버님 댁에서 가까운 오리구이 집으로 장소를 정하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께서 올해는 밖에서 하지 말고 여름을 잘 보낼 수 있게 닭을 고아서 한 그릇씩 먹자고 하신다. 닭을 준비해서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봄부터 병아리 사다 키워 이제 잡아먹으면 된다고 하신다. 그제야, 봄부터 마당에 졸졸졸 따라 다니던 노란 병아리가 생각났다.
어머니는 이날을 위해 병아리를 사다가 열심히 모이를 주고 키우셨던 것이다.
육남매를 곱게 키워 객지로 내보내고 당신 손으로 키우신 닭을 잡아 마당 한쪽 감나무 아래 걸쳐놓은 무쇠 솥단지에 황기, 인삼, 엄나무 등을 차곡차곡 담아 어머니표 삼계탕을 끓이셨다. 모두가 후루룩 땀 훔치며 먹는 모습을 바라보시던 자상하신 어머니.
집으로 돌아와 잘 돌아 왔다는 인사를 해야지 하고 수화기를 드는 순간 어머니의 전화가 먼저 걸려온다.
"비오는 데 잘 들어갔냐? 우르르 가고 나니 섭섭하더라. 근데 오늘 네가 해온 청방배추 겉절이가 너무 맛있더라." 맏며느리 칭찬을 아끼시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배려에 감사하며 퍼 주어도 퍼 주어도 샘물처럼 솟아나시는 부모님의 사랑에 행복한 여름날이다.
강정숙(대구 중구 대봉1동)
♥수필2-서랍을 정리하다.
장마철 습기가 어깨 위에 끈적끈적 숄처럼 내려앉은 토요일 오후. 처음에 서랍 한 칸을 정리해보려고 시작 했지만 한번 시작한 정리는 이상하게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새 손길은 주방으로, 옷장으로, 책장으로, 신발장으로까지 옮겨가게 되어, 정리를 다 마치고 나니 시간은 자정을 훨씬 지나 있었다. 몸은 녹초가 되어 피곤하지만 집안공기가 산뜻하고 말끔하게 확 달라져 있어 피곤한 줄도 모르겠다. 밀린 숙제를 해치운 학생처럼 뿌듯하기까지 하다.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어 필요한 것을 찾기가 어려웠던 서랍 속 물건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보니 정작 필요한 것 보다 필요 없는 물건들을 더 많이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매사에 사람한테 가진 기대나, 물건에 대해 가진 애착들을 싶게 내려놓고, 버리기가 항상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늘 뭔가가 부족했고, 더 잘해주기를 바랐고, 더 많이 갖고 싶었고, 더 근사하게 보이고 싶었다. '이만하면 됐다' 싶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괜한 미련은 버리기로 했다.
깨끗한 옷가지들과 멀쩡한 물건들은 아파트 입구에 있는 재활용 투입구에 가져다 놓으면 필요한 사람들한테 요긴하게 쓰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마음을 고쳐먹고 나니 순식간에 버려야 할 잡동사니들이 한쪽 옆에 수북이 쌓였다. 버리면서 얻어지는 희열이 이 정도일 줄이야!
무엇보다 살림살이가 이젠 좀 더 다루기 쉬운 크기로 깎아 다듬어져 있어 좋았다.
꼭 필요한 것들로 군더더기 없는 생활공간이 마음에 더할 나위없는 편안함을 불러일으켜 길고 긴 장마를 잘 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슬며시 생겨난다.
장분남(경산시 진량읍 부기리)
♥시1-유모차
아이가 타고 있어야 하는데
박스꾸러미로 가득 차 있다
어른들의 소일거리가 아니고
용돈벌이로 박스를 줍는다
어떨 땐 아이가 아니고 개가 앉아있다
다리 불편한 어른들
지팡이 대신 유모차에 의지해
운동 겸 끌고 다닌다
유모차에 아이가 타야하는데
개와 빈 박스가 타고 있다
이길자(김천시 평화동)
♥시2-소통(疏通)
아파트 담장 너머
산에서 내려오는 길
하수구
물을 토해내고 있다
솔가지 가로막아
떠내려 오는 것들을 막아섰다.
내 안에서도
음복(飮福) 한 도라지, 고사리들이 저렇게 걸렸었는지!
온 밤 내 뒤척였더니!
새벽부터 내린 비로
세상도 저렇게 고통을 당하는구나!
흙탕물 일지언정 콸콸콸 흐르면 좋으련만!
때마침 아침 뉴스는 소통을 말하고 있다.
수지침은 손가락 끝을 통해 소통시키고
어떤 이가 하수구에 걸린 찌꺼기를 걷어내자
소통이다.
먹통 같은 TV의 까만 화면도
작동하는 순간 소통이다.
소통하라
소통하면 대통(大通)하리라.
문삼숙(대구 달서구 용산동)
♥남을 위해 산다면
타고난 육체적인 힘보다는
경험에서 나오는 요령이 낫고
타성에 젖어버린 요령보다는
따뜻한 마음이 더 필요하고
식어버린 마음보다는 차라리
수명이 다할 때까지 꺼지지 않을
연탄불 같은 희생과 봉사정신이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더라.
조상현(대구 달서구 상인1동)
※지난주 선정되신 분은 편재영(김천시 교동) 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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