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리영호 숙청, 변화의 서막인가

입력 2012-07-19 09:34:51

북한은 7월 15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열어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를 해임하고 모든 공직을 박탈했다. 리영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의해 2009년 2월 한국군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총참모장에 발탁되었고, 2011년 12월 김정일 장례식 때 운구차를 호위한 7인방 중의 한 명이었다. 또한, 노동당 상무위원이자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었다. 군 최고의 실세이자 권력서열 5위의 인물이 졸지에 사라진 사실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지만, 일단 세 가지의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첫째는 장성택과 리영호 간의 권력암투설이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으로 한때 숙청되기도 했지만 복권 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노동당 정치국위원, 행정부장 등의 직함으로 김정일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김정은의 등극과 함께 더욱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다. 한편, 최룡해는 김정은 정권에서 북한군을 사상적으로 감독하는 총정치국장에 오르면서 일약 유명해진 인물인데, 장성택의 사람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렇다면 2009년 이래 3년 동안 북한군을 좌지우지했던 리영호가 갑자기 부상한 최룡해와 권력다툼을 벌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장성택이 최룡해를 앞세워 리영호를 제거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둘째는 실용주의 세력과 군부 간의 세력다툼설이다.

지난 2월 29일 미북 간에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의 유예,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복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중단 등을 약속하는 대가로 미국이 식량을 지원한다는 합의가 있었다. 하지만, 북한이 4월 13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함으로써 합의는 무산되었는데, 당시 군부가 미사일 발사를 주도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국과 합의를 도출한 외무성과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군부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후 중국이 북한에 개혁개방을 종용한다는 보도들이 있었고, 이를 의식하여 김정은 정부가 민생 챙기기에 신경을 쓴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경제 살리기를 위해 당, 군, 내각 등으로 분산된 '외화벌이' 무역창구들을 내각으로 일원화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었고, 군부가 반발한다는 첩보도 들렸다. 이런 것들을 종합한다면, 경제 마인드를 가지기 시작한 북한 정부가 불타협적 대외정책을 고수하면서 자신들의 '돈줄'을 지키고자 하는 군부에 일침을 가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셋째, 백두혈통의 권위를 세우고 왕정국가의 기강을 잡은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북한은 김일성 일족이 다스리는 사실상의 왕정국가이기 때문에 백두혈통을 이은 김정은으로의 권력승계는 일단 숙명이었다. 당연히 김경희-장성택이 로열패밀리의 일원으로 섭정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가진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백두혈통을 옹위하는 로열패밀리 세력이 젊은 지도자를 얕볼 가능성이 있는 군부실세를 내침으로써 확실하게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거사(擧事)였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7월 18일 북한이 서둘러 김정은에게 '원수' 칭호를 부여한 것은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사실이다. 당 정치국 회의에서 리영호를 제거한 것은 왕정 다지기를 위해 선당(先黨)정치 재개로 선군(先軍)정치의 위세를 조정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여러 해석 중에서 어느 것이 진실인지 또는 다른 진실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확인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정보가 필요하다. 천안함-연평도 도발의 책임을 가진 강경인사의 소멸은 긍정적 변화의 서막일 수 있고, 향후 남북관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내부 반발 여부에 따라서는 엄청난 후폭풍의 서막일 수도 있다. 우리는 북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비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김태우/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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